만일 내가 태어나 어린 나이에 나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부모에 의해 입양되어 자랐다면 성인이 되어 어딘가 살고 있을 낳아 준 부모를 찾으려 할까? 굳이 찾을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그들은 나를 낳기만 했지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출생에 관해서 알고 싶어 한다. 이 경우 입양이란 수단을 통해 자식과의 관계를 정리한 게 생모란 존재이므로 법적으로도 생모가 입양 후 입양한 집에 나타나 한 가정의 안녕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입양된 자식은 성인이 되어도 생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낳은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미성년 미혼모, 성매매 피해 여성, 극빈자, 북한이탈 주민, 외국인 체류자, 장애인 등 일반인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그들일 것이다. 임신은 했지만 정상적으로 자식을 낳기 어려워 만일 낙태를 한다면 현행법에서는 1년 이하 징역 혹은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어야 한다. 만일 미혼모가 자녀를 낳아 버릴 경우 그 자녀는 호적에도 이름이 없는 私生兒가 되어버린다. 두 남녀가 서로 교제를 해서 애가 생겼는데도 남자가 혹은 남자 집안에서 결혼을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여자는 자식을 입양시킬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입양된 이들 중에는 낳은 정은 없지만 새로운 가정에서 잘 키워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국의 한 판자촌에서 태어나 3일 만에 발견된 '종숙'이란 이름의 여자 아이는 6개월 만에 홀트 아동복지회에 의해 프랑스로 보내진다. 프랑스인 양부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애에게 '플뢰르(Fleur, 꽃)'란 단어를 조합해 '플뢰르 펠르랭'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열과 성을 다해 교육을 시킨다. 그녀는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와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올랑드 정부 중소기업 디지털장관(2012~ 16)을 역임한다. 그녀는 에세이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에서 "나는 프랑스에 정말 동화되어 살았고 정체성 문제나 애정결핍을 전혀 겪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생물학적 뿌리를 찾으려 했을지 모른다. 내가 왜 버려졌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마 비천한 정도는 아니어도 슬픈 이유일 것이다"라고 썼다.
이와는 달리 해외 입양아중에서는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구겨진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1년 최진실이 주연한 영화의 한국명 '신유숙'인 스웨덴 입양아 '수잔브링크'의 경우이다. 1963년에 태어난 그녀는 3년 후 스웨덴에 입양되어 낯선 환경과 다른 생김새로 인한 소외감과 양부모의 학대 속에서 암울한 성장기를 보낸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혼전임신, 출산, 실연, 자살기도 등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1989년 입양 23년 만에 만난 생모와도 경제적 문화적 차이로 절연하고 "한국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결국 글과 말을 통해 입양인의 권리를 위해 대변인 역할을 했던 그녀는 2009년 46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다.
세상에 태어나 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는 사람들은 낳은 정과 키운 정이 합쳐져 온전한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한다. 전통적으로 가정을 중시해 온 대한민국에서는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들에게 '후레자식'혹은 '호로세끼'란 경멸적인 말을 사용하였다. 막되게 자라 버릇이 없는 사람이란 뜻인데 부모도 없는 자식이란 말이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기에 어디 가서 막되 먹은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태어날 때에는 비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누군가에 의해 제대로 키워진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지만 대개는 정상적으로 키워지기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에는 전쟁 후 많은 전쟁고아가 있었고 수만 명이 형편이 좀 나은 국가로 대거 입양되어 키워졌다. 미국에 있을 때 맥도널드에서 우연히 만난 적 있는 자칭 한국인이라는 한 인간은 고아였는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욕설을 섞은 한국말을 하던 저속한 인간이었다.
내가 10대이던 중학교 때 부산 시내에 있는 한 탁구장은 주변 문제아들 집합소였다. 복장도 불량하기 짝이 없었고 음주와 흡연은 기본이고 심지어 마약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학교를 자퇴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퇴자들은 일찍이 '칠성파'와 같은 지역의 조폭집단에 들어가 조직원이 되어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시내에서 가까운 집창촌 포주의 딸도 하나 있었다는데 엄마는 있고 아빠는 없는 가정이었던 것 같다. 다들 결손가정의 자녀들이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 그런 불량 청소년들의 수가 적어졌는지는 모른다. 출산율이 낮아져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자녀의 수도 적어졌을 것 같고 비정상적으로 키워지는 경우도 적을지 모른다. 상식이 통하는 건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가정교육이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 제대로 태어나 제대로 성장하는 사람이 많길 손 모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