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작자가 未詳인 고소설로서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연대가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후기인 영정조 때 나온 걸로 추정된다. 당시는 양반 중심의 엄격한 신분사회였고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사회였기에 春香傳에서 보여주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제는 하나의 逸脫이었고 과거에 급제한 양반과 기생의 딸 그것도 서얼이 신분을 뛰어넘어 부부가 되는 것은 파격을 넘은 獵奇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시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건 상상밖의 일이었기에 누구나의 흥미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그런 내용의 글을 쓸 엄두는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글을 쓰고 나서 이름을 밝히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혹 그랬다가는 관가에 끌려가 어떤 곤욕을 치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男女七歲指南鐵이지만 전통적인 유교규범에서는 男女七歲不同席이었다. 열여섯 전후라는 二八靑春은 현재로 보면 중학생 내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지만 당시는 혼인 연령이 15~20세였기에 그다지 어린 연령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사망 연령이 35~40세 (왕들 평균 수명 47세)로 환갑까지 살면 잔치를 벌일 정도로 수명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몽룡이 廣寒樓에서 그네를 타던 춘향의 미모와 자태를 보고 반해서 마음이 움직인 것도 나이로 보면 크게 비정상적인 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思春期가 오고 신체적인 변화와 함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이성에 대한 관심 내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사실 10대는 성적인 욕구가 인생에서 가장 강하고 억누르기도 힘든 때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별력과 자제력이 부족하기에 폭발하는 감정을 제대로 억누르지 못할 경우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以熱治熱이란 말대로 성적인 문제는 금기시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개방시킬 필요도 있다.
이와 유사한 걸로 과거 군사독재시절 금지곡을 들 수 있다. 대중가요 중에서 개성과 자유와 현실에의 불만 등의 내용을 담은 노래는 저질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모조리 금지시켜 버렸다. 당시에 활동했던 가수 양희은의 말에 의하면 노래는 저마다 나름 수명이란 게 있는데 기억에서 금방 사라질 노래도 금지곡이란 명찰 때문에 오히려 수명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도령이라면 어땠을까? 기생의 정실도 아닌 서자라는 비천한 신분의 춘향이 예쁘긴 한 모양인데 그 미모에 반해 지체 높은 양반집 자제가 기생월매에게 가서 딸과 혼인하겠다고 하니 월매 입장에서는 밑질 것 없는 장사라고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반면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속이고 초라한 몰골로 나타났을 때 월매는 사람을 무시하고 신세를 한탄하는 속물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인다.
또한 옥에 갇힌 춘향을 찾아가 만날 때 왜 굳이 자신이 과거에 급제했고 어사가 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춘향전에서는 가장 의미심장한 게 바로 그 대목이다.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어사가 되어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굳이 춘향을 찾아온 건 미인인 춘향을 잠시 데리고 놀기 위한 동기에서인 건 정녕 아니었다. 그렇다면 옥에 갇혀 고생하는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굿뉴스를 감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일부러 감춘 이유라면 과연 춘향이 어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자신이란 한 인간을 진정 올곧게 사랑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사가 되어 죄인의 신분인 춘향을 앞에 두고도 얼굴을 가리고는 "나에게 수청을 들겠는가?" 하고 재차 물어보며 한번 더 사랑의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태도를 보인 춘향이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또한 고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 전 주로 대학 때 한 이성을 뜨겁게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은 아직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때라서 그때 경험한 사랑은 동기가 무척 순수하다. 하지만 만일 상대의 집이 부유하거나 혹은 집안이 좋아서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건 엄밀히 말해서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을 진정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입고 있는 옷을 사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짜인 각본에 맞게 사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마치 행복한 삶인 양 말하곤 한다. 다시 말해 명문대학을 나온 남자가 의사나 교수 혹은 법조인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부유한 집안의 여자를 만나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몰며 자식을 미국에 유학시키면 행복한 걸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의 삶은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인간은 없고 조건만 뻐젓한데 조건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쉽게 쉽게 바뀌는 인간일수록 조건을 무척 좋아하는데 인간의 가치는 최소한 조건보다는 위에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