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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학원강사가 되었다면?

by 최봉기

지금까지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公敎育과 학원이나 과외 등 私敎育으로 구분되지만 공교육의 권위가 사교육보다 떨어진다는 생각을 왠지 떨칠 수 없다. 과거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를 가던 때와 달리 현재의 일반고란 곳은 일등부터 꼴찌까지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니 교사들이 중간 혹은 중상 정도에 맞춰 수업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상위권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만 의존하기 어려워 공교육에서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보충할 대안을 찾는데 그 대안이 사교육이 아닐까 싶다.


특히 최근 수능 관련 킬러문제를 놓고 사교육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려운 문제 때문에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사교육 때문에 본고사가 없어졌고 한때는 서민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던 사교육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다. 과외 금지조치는 서민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고 학력고사와 내신으로 이루어지는 공교육 중심의 입시제도가 정착되나 싶더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는 늘 도마 위에 오르며 계속 손질되었다.


입시제도는 입시 관련 종사자들의 얼굴을 환하게 또한 때로는 어둡게 하기도 했다. 교사가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이라면 학원강사는 일이 잘 될 때는 큰돈을 벌다가도 입시제도가 바뀌어 사교육이 위축되거나 심지어 과외금지가 될 경우 빈민으로 전락하는 사업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5 공화국의 전신인 '국보위'란 기관에서 本考査제도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만으로 입시를 치르게 하며 과외를 전면 금지시킨다. 그러자 학원의 단과반 강사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한다. 광주 학살로 인해 殺人魔란 소리를 듣던 전두환이지만 과외금지 정책은 당시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본고사가 있던 시절로 돌아가면 入試地獄이란 말과 함께 학원가는 내내 門前盛市를 이루었다. 새벽반이 있는가 하면 방학 때 학원은 수강생들로 入錐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말해 학원강사들에게 방학은 하루종일 수업을 하며 평상시보다 몇 배의 돈을 벌 수 있는 대목이었기에 이들 입에서는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명강사들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고 입시 관련 정보에 밝을 뿐 아니라 유머와 입담까지 두루 갖췄다. 그래서 90분 강의를 하는 동안 내용도 꽤 알차고 지겹지도 않다 보니 일단 이름이 알려지면 수강신청 때 조기 마감이 되어 버린다. 70년대 강사들은 교사급여가 10~20만 원일 때 기본 수입이 100만 원 정도, 유명강사가 되면 수백내지 천만 원까지도 육박했던 것 같다.


만일 내가 학원강사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꽤나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영어강사로 강의실에서 분필을 들면 수강생들을 웃겼다 울렸다 하며 90분간 연극무대에서 모노드라마를 하듯 수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름이 나면 주변에서 시기와 질투뿐 아니라 모함의 표적이 될지 모르지만 꿋꿋하게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 돈을 불려서 자기 건물도 갖고 학원을 하나 설립한 다음 기회를 봐서 상산고와 같은 학교 혹은 대학까지 설립할 생각도 해봄 직할 것 같다.


학원 강사나 교재의 저자 중 슈퍼스타가 되어 크게 출세한 인물들이 더러 있다. '수학의 정석'의 저자 홍성대와 '한샘국어'의 저자 서한샘, '성문 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해법수학의 저자 '최용준' 등이 그러하다. 홍성대는 정석수학으로 거부가 되어 전주의 명문 자사고인 '상산고'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성문 핵심영어를 가르쳤던 한 씨 성의 강사는 학원강사를 잠시 하다가 한국일보 기자가 되었고 그 후 미국에 유학을 가서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아 동아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스토리가 2017.4월 'SBS스페셜'에 '빛나는 흑역사'란 타이틀로 소개된 바 있다. 원래 그는 경남고를 졸업하고 S대 치대 인가를 입학했는데 적성에 안 맞았는지 거의 전 과목 F학점을 받았고 결국 전과를 하여 인문대를 졸업한 걸로 나온다. 졸업 후 입사했던 회사가 당시 무역업계의 신데렐라였던 율산, 제세, 대봉이었는데 세 회사 모두 도산하였다. 당시 실직으로 삶의 방황기때 했던 일이 입시학원 영어강사였다.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들 가운데에서 사업이 실패했거나 직장을 나왔거나 혹은 반정부활동을 하다 형집행을 받고 학원에 발을 들였다가 인기 유명강사가 된 경우도 있다. 앞으로는 학원에서 스타가 된 이들 누군가가 벤처기업을 세워 크게 성공해 전설이나 우상 내지 신화가 되는 일도 많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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