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는 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삶 자체가 어찌 되는 건 아니지만 늘 衣食住를 걱정하며 불안감속에서 산다면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인문사회 과학 서적들을 보면 대개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이다 보니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은 그다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는 것 같다. 보다 피부에 와닿는 얘기로 들어가서 만일 전쟁이 일어나거나 기아상태가 될 경우 총탄이나 독가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방탄조끼나 방독면 혹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식량의 존재는 어찌 보면 심오한 철학이나 이론보다 더한 의미를 가질지 모른다.
이러한 현실적 인식에 입각한다면 대개 공허한 것보다는 뭔가 손에 잡히고 당장 돈이라도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변함없고 올곧은 신념을 가진 이들은 그들만의 소중한 철학을 현실 속에서 간직하며 지낸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생존에 목숨을 거는 현실주의자들의 사고나 가치체계에 염증 내지 회의감을 가짐에 따라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추구한다. 이런 이들을 '로멘티스트'라 부른다.
만일 내가 로멘티스트라면 어땠을까?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서인지 기분이 왠지 얄궂기만 하다. 환갑을 앞둔 이 나이에 나도 그런 때가 있었구나 싶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 이제 인간의 개성과 세상에 대한 신비감 내지 신선함을 상실한 채 묻혀 지내는 존재란 생각도 든다. 지금 시점에서 로멘티스트의 삶을 추구한다면 엄밀히 말해 현실적 로멘티스트라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치명적인 건 산소이다. 만일 산소가 없다면 바로 숨이 멈추고 인간은 사망하게 된다. 그 다음이 밥이다. 밥은 사실 몇 끼 아니라 보름씩 굶어도 생명이 바로 정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산소보다 더 중요한 게 밥이다. 또한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있어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면 適者生存이나 弱肉强食이 아닌 共存共榮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은 어찌 될지언정 자기와 자기 가족이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가족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사회의 불의와 정면대결하고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던 한 로멘티스트가 있었다. 그는 박정희란 최고권력자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던 思想界의 편집인 장준하이다. 아직도 그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은 미제로 남아 있다. 장례식장을 찾았던 이태영변호사가 그의 미망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러자 미망인의 말이 "이이는 살아계실 때에도 집에 생활비라고 한 푼 가져와 본 일이 없네요"였다. 강연회나 결혼식 주례라도 해주고 받은 돈은 죄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의 주머니로 갔고 집에는 빚쟁이들로 늘 붐볐다.
한번 살다 가는 인생이지만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血眼이 된 채 주변의 사람들 혹은 사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에고이스트는 사회에서 왕따가 되고 대신 그 자리를 고독한 로멘티스트가 차지할 수라도 있다면 혼란과 이기주의가 판치는 지금 세상에 인간의 향기가 느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