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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後進國 국민이라면?

by 최봉기

後進國이란 말과 先進國이란 말은 마치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지 모른다. 현재 후진국인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캄보디아와 기타 아프리카 국가들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활수준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주로 농업이나 어업 등 1차 산업이 중심이며 1인당 국민소득도 낮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아직도 부족들 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건 '하늘에서 별따기'와 같이 힘들지 모른다.


현재 20대 초반인 내 딸과 중반을 지난 아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일 때 태어난 이들이다. 내가 그들 나이였을 때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향해 한창 발돋움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거란 예상은 쉽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5공은 불법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정권이라 권위적이고 고압적이었으며 권력층을 사칭한 희대의 어음사기까지 터지는 등 사회분위기가 어두웠고 연일 대학가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먹고 사느라 不撤晝夜로 바빴고 다들 여유가 없었다. 당시 대기업에 취업해서 한 번씩 학교에 들렀던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평일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건 기본이고 주말이나 일요일까지 회사에 나가는 일도 있다고 하였다.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고 88 서울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끝나며 대한민국의 대외 이미지와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다. 그와 동시에 독재국가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자 그간 억압과 통제 속에서 갇혀있던 각종 요구들이 터져 나오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차츰 안정을 찾으며 선진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도 증가할 뿐 아니라 기회만 된다면 코리아에 이민 와서 살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계속 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경제와 비즈니스 및 학문 등의 목적으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국가들이 또한 증가하는 추세이다.


만일 내가 후진국 국민이라면 어땠을까? 개인의 소득 수준이 떨어져 먹고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주거환경도 열악해 겨울에는 감기환자가 속출하고 여름에는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바람에 의존하며 지낼 것이다. 자가용도 없이 출퇴근시간에는 콩나물시루와 같은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런 과거의 생활을 과연 우리 자녀들은 알기나 할까? 1960년대 유럽에서 공부했던 이들 중에는 국경을 넘을 때 한국여권을 보여주면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코리아'란 나라는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부모의 직업이 변변치 않거나 집의 형편이 좋지 못할 경우 학교에서 자식이 이유도 없이 무시당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러니 인간대접이라도 받으려면 일단 잘 살고 볼 일이다. 가까운 친구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 사업을 하던 부친의 회사가 부도를 내며 경제적으로 힘든 때가 있었다. 그때 그가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랑 다툰 적이 있었는데 잘못을 한 당사자가 그 친구였음에도 담임과 다툰 친구 보호자까지 합세해 자기만 다구치며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당시 학교의 분위기는 성적이 우수하다면 몰라도 집이 못 살면서 성적까지 별로라면 교사들로부터 체벌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해방이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속국이던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차별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들이 당하는 차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못 살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자녀들은 우리 윗세대나 우리가 가난하기에 경험했던 설움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의 그림자가 마음 한편에 드리운다. 우리가 가난했기에 당했던 불이익과 설움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현재 삶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또한 거지가 3대를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윗 세대가 땀과 눈물로 이루어 놓은 선진국의 위상은 그만한 노력과 간절함이 함께 할 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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