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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말로 바뀌는 세상

by 최봉기

인간의 의사표현 수단은 크게 보면 말 아니면 글이다. 우선 말은 생각하는 걸 남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무엇보다 현장감과 생동감이 있다. 하지만 한번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거친 감정을 여과시키지 않은 채 내뱉은 말은 간혹 상대편 누군가의 파멸을 가져오기도 한다. 故人이 된 한 국가지도자가 한때 TV에서 감정을 담아 직선적으로 말을 내뱉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게 된 관련자가 바로 한강에 투신한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반해 글은 말과 비교해 감정을 여과하여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 말에 비해 큰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적다. 또한 깊은 思索을 통해 진실과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애절함을 담은 글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말과 글은 서로 속성이 다르지만 상황별로 적절한 조합을 할 수 있다면 나름 훌륭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형식의 제약을 받는 글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요긴하게 활용되는 말은 편리할 뿐 아니라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말은 가벼운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깊이 있는 내용을 장황하게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또한 라디오나 TV 혹은 동영상 등 말을 통한 전달수단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인류는 줄곳 책이나 신문 등 글 중심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간편하지만 가벼워 보이는 口語體는 文語體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조가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때 한글이 창제되었을 때 일부 학자들은 한글을 '諺文'이라 하여 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등 말에다 동영상까지 결합한 다채로운 매체가 나오며 이제는 글 중심의 따분한 표현양식은 서서히 퇴조의 길을 걷는 건 아닌지 의아해진다. 이렇듯 과거와 비교해 현재 환상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글로 된 서적 등을 통해 정신적 고뇌와 철학적 사고를 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 속에서 벼가 땡볕아래서 여물어지듯 성숙해지건만 지금과 같이 간편하게 클릭만 하여 얻어지는 해답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일 경우 결국 자신의 인생이 자기 몸에 맞춘 맞춤옷이 아닌 기성복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유한 개성을 추구하며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나만의 독특함 대신 평균화된 데이터에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글에서 말로 바뀌는 게 세상의 흐름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다소 번거로울지언정 지금껏 인류의 역사를 견인해 온 글이 가지는 잠재력을 깨달아 달콤한 말과 동영상의 늪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이 많지 않길 두 손 모아 간절히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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