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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삶 속 逸脫과 도전

by 최봉기

인간은 '搖藍에서 무덤까지' 짧지 않은 세월을 어찌 보면 늘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삶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따분한 삶이지만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해서 자신의 가정도 갖고 자녀도 키우며 벌인 사업이 잘 될 때에는 신도 나지만 결국 去頭截尾하면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가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보람이나 사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만 축내며 살다가 사라지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삶 속에 숨어있는 가치와 의미가 충만하도록 安住하기보다 의도적으로라도 逸脫이나 挑戰을 추구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무미건조한 삶이기에 한 번씩 逸脫의 시간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의 경우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통해 전교생이 한 번씩 긴장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낭만을 즐기기도 하고 방학 때에는 잠시나마 해방의 기쁨도 맛본다. 일반인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스포츠와 코미디나 쇼 등을 통해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듯한 기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뿐 아니라 과거 농경사회에도 '祭天行事'란 게 있었고 명절 때에는 모처럼 일손을 놓고 가족이나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족하지 않은 살림일지언정 하루 이틀이라도 먹고 마시며 閑談을 나누는 일이 있었다. 이 또한 따분한 일과를 벗어나 모처럼 갖는 逸脫의 시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간혹 반대항 핸드볼이나 배구 시합이 있었다. 우리 반이 다른 반과 시합을 할 때엔 반 친구들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고 이길 땐 마치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듯 氣高萬丈하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02년 월드컵 때 시민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걸치고 자리를 깔고 앉아 시청광장 앞에서 응원하다 골이 터질 때에는 우렁찬 함성이 하늘로 치솟았다. 과거 지역예선을 통과해 월드컵에 어렵게 출전하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번번이 패하기만 하던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상대로 8강전에서 역전승을 거둘 때에는 TV중계를 보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승리에 도취하여 아파트 주변의 상가로 뛰쳐나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逸脫과 카타르시스마저 없다면 과연 따분하기만 한 세상을 살 재미가 있긴 한 것일까? 이런 취지와도 일맥상통하듯 때로는 남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는 파격적이고 힘든 일에 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현직 대학교수로 시작해 총장까지 역임했던 동아대학교 사회학과의 한석정교수(53년생)은 42세의 나이에 남들이 감히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복싱이란 스포츠에 뛰어들어 60세가 될 때까지 매 순간 포기하고픈 유혹과 늘 싸우면서 발길을 항상 퀴퀴한 냄새가 나는 복싱도장으로 향했다. 다니던 도장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으면 새로운 도장으로 옮기기까지 하며 4개의 도장에서 끝까지 운동을 해나갔다. 시합 전엔 굶어가며 10kg씩 감량도 하였고 한참 아래 나이의 팔팔한 복서들과 맞붙어 코피가 터지고 다운을 당할 때 타월을 던지려는 관장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맞서며 판정까지 가는 鬪魂도 보였다.


그간 복싱도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과거 박사과정 때 시작했던 중국어와 일본어에 매달려 어느 정도의 대화까지 가능한 수준도 되었고 그 후 러시아어와 아랍어에도 도전 중이다. 死地의 벼랑에서 살아남는 단련과 끈질김을 그에게 주었던 복싱은 晩學徒로서의 도전정신까지 갖게 한 삶의 伴侶者가 되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변화를 싫어하며 주어진 삶 속에서 안주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간혹 逸脫과 함께 힘든 일에 주저함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도전 의지가 필요하리라 보인다. 이런 변화의 충동마저 없이 산다면 숨만 쉬고 눈만 뜬 식물인간과 뭐가 다르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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