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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와의 싸움

by 최봉기

살면서 땡볕이나 무더위란 게 없다면 어떨까? 요즈음 같은 三伏더위엔 무더위 없이 살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그걸 찾고 싶다. 사실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세상 곳곳에는 늘 봄가을 날씨인 곳들도 있기 때문이다. LA의 경우 7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14~24도로 우리의 9월과 비슷하며 12월의 경우도 9~19도 정도로 별로 춥지 않다. LA에서만 평생 살던 사람이 서울에 와서 지낸다면 여름과 겨울은 生地獄과도 같을지 모른다. 지금은 냉난방시설이 잘 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선풍기나 연탄난로에 의존하며 지내던 때라고 한다면 어감이 크게 달라진다.


적도에서 가까운 열대기후의 나라들은 사시사철이 여름인 반면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워낙 뚜렷해 여름은 찌고 겨울은 살을 에이건만 봄은 햇살이 화사하여 나들이하기 좋고 가을은 선선하여 활동하기가 그만이다. 또한 계절별 과일과 채소를 입맛대로 먹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기후적응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아프리카든 북극이든 가서 살기만 하면 금세 적응해 버린다.


하지만 어김없이 때만 되면 찾아와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찜통더위는 누구에게나 不請客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한 교훈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선 더위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따라서 덥다고 나태해지는 경우와 덥지만 요령 피우지 않고 땀 흘리며 일하는 경우는 당장은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 차이가 선명해진다. 동화 속의 '개미와 베짱이'의 비유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위속에서 흘린 땀은 영악한 사람이 볼 땐 어찌 보면 미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머지않아 찬바람이 불 때가 되어서야 흘린 땀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나는 것이며 그게 인생이다.


고3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더운 여름에 꾹 참고 공부를 한 이들은 이듬해 대학배지를 달고 미팅과 축제를 다니며 낭만도 즐기게 되지만 덥다고 게으름을 피웠던 친구들은 다음 해 입시학원에서 또 한 번의 힘든 여름을 보내며 소중한 삶의 법칙을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혹한기인 겨울은 추워야 벼농사에 방해가 되는 벌레들이 사라지고 다음 해 농사가 제대로 되건만 겨울이 따뜻할 경우 다음 해엔 어김없이 병충해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또한 여름에는 더워야 뜨거운 태양아래서 벼도 여물게 되며 제대로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끔찍한 추위나 더위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忍苦의 과정은 참된 기쁨을 위한 惡役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요즈음과 같이 푹푹 찔 때 혹은 사는 게 힘들고 힘이 빠질 때일수록 그 속에 잠재된 삶의 교훈을 한번 더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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