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행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

by 최봉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행복의 의미를 원초적 본능의 차원에서 접근해 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生存이 아닐 수 없다. 들판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겉으론 자유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꿀을 먹어야 생존하기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의 경우에도 생존의 급한 불을 끄고 나면 그때부터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린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은 즉흥적이며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좀 더 영속적인 기쁨을 갖기 위해 인간은 哲學과 宗敎에 눈을 돌린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의 폭과 깊이를 제고시켜 줌으로써 인간이 보다 영속적인 기쁨을 추구하는데 일조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쾌락에 머물지 않고 창작과 예술 등을 통해 기쁨의 격조를 끌어올린다. 또한 종교는 인간의 영혼과 내세를 인정함으로써 인생의 무상함을 뛰어넘어 영원한 기쁨을 추구하도록 한다.


현재보다 못살던 과거에는 현재와 달리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연장자의 권위가 인정되었고 예의가 중시되었으며 사회의 기강과 질서가 서있었다. 과거에는 최근 문제가 되는 영아살인이나 마약복용과 같은 범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현재는 최저급여 상승으로 인해 놀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해도 기본생활은 해결되건만 兩極化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인지 자신의 불만을 아무 관련 없는 이들에게 분풀이하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일도 발생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러한 작태는 누구나에게 소중한 행복추구권을 아예 포기하거나 왜곡시킴으로써 나오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은 爭取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기에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어찌 보면 자신만 움켜쥐려 할 땐 증발해 버리고 함께 나누려 할 땐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이 행복이다. 따라서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사회구성원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이 은행빚에 시달리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가족이 동반자살하는 일이 생길 때 이를 한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가슴 아파하며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도 인간이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또한 청소년들이 非行을 저지를 때 꾸짖는 게 어른이건만 지금은 혹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지나쳐 버리는 세상이다. 지하철에서 혼자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수십 분씩 하면서도 주변사람들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 인간들도 많은 세상이다. 세상은 겉으로는 과학기술이 진보하며 발전한다고 하지만 속으로 볼 때 세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인간은 俗物化되고 있다. 남의 행복을 착복해서 얻는 행복은 곧 불행임을 또한 어울려 함께 행복해지려 할 때 자신의 행복도 커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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