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로서 성실하고 유능하며 책임감도 강하다. 따라서 표정이 밝을 뿐 아니라 주관도 강하며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선뜻 도와주기도 한다. 그밖에 자신의 가족 외에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이 많다면 사회도 활기가 넘치고 미래가 밝을 것이다.
반면 행복 저편의 음지에 서있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이들은 자신감 대신 권위와 오만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라도 늘 자기의 입장만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고립된 삶 속에서 자기 합리화에 급급해 당당하지 못하고 표정도 밝지 못하다. 이러한 이들은 어찌 보면 스스로 행복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회의 행복에도 별 도움이 안 될지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정직함과 따뜻함인데 이익 내지 본전에 연연하기보다 한 번씩은 손해도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며 행복을 손에 넣었다면 그건 엄밀한 의미의 행복이 아니다. 만일 교회에 나가는 이들 중 그런 행복을 자신이 기도와 헌금을 했더니 하느님이 주신 거라 한다면 그건 분명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다. 왜냐하면 그건 하느님이 아닌 악마가 준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행복은 금세 포말로 사라질 수도 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 가운데에는 리더형이 있고 범생형이 있다. 리더형들은 성격도 활달하고 공부를 싫어하는 친구들과도 어울릴 줄 아는 반면 범생형은 공부에만 몰입하므로 공부를 싫어하는 친구들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해 관료나 법관이 될 경우 다소 독단적일 수도 있다. 가령 판사가 배가 고파 먹을 걸 훔친 사람을 서민의 애환은 깡두리 무시한 채 법조문에만 의거해 단순절도범으로 판결을 내린다면 이는 형평에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고 학교에서 열등생이 사회에서는 우등생"이란 말 아닐까?
학창 시절 한 번은 방과 후에 자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교무실로 어느 담임선생에게 중국집 볶음밥이 배달되어 왔다. 그러자 그 반에 있던 친구 몇이 교무실로 와서는 영문을 몰라하는 담임에게 "선생님 수고하시는데 저희가 이 정도 못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반 담임은 감동을 받아 우리에게 "그 친구들은 별로 모범생도 아니었어"라고 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우등생과 열등생이 함께 섞여있고 각각의 현재 혹은 미래도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를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사람이 많은 사회라면 분명 행복한 사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