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아름답고 香氣도 있어 보고 있으면 누구나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故人이 된 어느 시인은 '국화옆에서'라는 詩에서 한송이의 국화꽃이 피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며 밤에는 무서리가 내리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행복을 논하면서 땀과 거친 숨소리를 동반한 고통의 과정이 없다면 그 행복은 즉흥적이며 얄퍅한 즐거움에 불과할지 모른다.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데도 産母는 초주검이 되어 産痛을 치르며, 뱃속에서 밖으로 나온 핏덩이는 웃음이 아닌 거친 울음을 터뜨리는 게 누구나 맞이하는 인생의 첫걸음이다. 운동선수들도 최고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처절하기 짝이 없다. 복서들은 시합 전 보통 10kg의 감량을 한다고 하는데 링 위에서 때리고 맞는 것은 減量의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한다. 음식은 고사하고 물도 먹지 못하며 한계체중에 도달하지 못하면 시합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야구의 경우 투수들은 던진 공이 힘 있게 아래로 쫙 깔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히 하체가 강해야 하기에 다른 수비수들보다 러닝을 훨씬 많이 한다. 심지어 속에서 구역질이 날 정도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데 그런 생고생을 하기에 큰 대회에 나가 결승전에 올라 연장까지 가는 시합을 해서 극적인 승리를 하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나는 대학 때 영어연극 'Kismet' 공연에 배우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공연은 1984년 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거행되었는데 1983년 겨울에 오디션을 통해 배우 모집을 하고 방학 동안 대사에 연기에 율동에 노래까지 연습을 하다 보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특히 연기는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 과정에 구정이 끼어있어 집에 다녀오려 했는데 연출자는 연습을 이유로 명절인데 집에도 못 가게 하여 무척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억지로 집에는 갔다 왔지만 중간중간 사소한 이유로 쌓이는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공연 전 몇 주는 수업을 전폐하고 연습에 매달렸으며 총 5회 공연을 끝냈다. 중간에 3회 공연은 음악과 노래가 잘 맞지 않아 관객들에게 약간 무안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쫑파티가 있었다. 다들 지쳤고 허무함도 일시에 닥쳐왔다. 나는 불현듯 일어나서 그동안의 소회를 거침없이 술회했다. "우리가 무슨 프로극단입니까? 학생으로 연극이란 예술활동을 경험하고 서로를 북돋으며 최선을 다했으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했고 중간에 "실패라고 생각되는 3회 공연 때 나는 가장 큰 소리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어요. 내가 볼 때는 그 공연이 가장 성공한 공연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 후 체중도 몇 kg씩 빠졌는데 힘들었던 그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그럴리야 없겠지만 앞으로 혹 연극을 할 일이 있다면 一言之下에 거절할 것 같다.
이렇듯 삶을 돌아보면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기쁨보다는 고통의 시간이 더 길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영광스러운 행복의 시간은 잠시이고 행복을 위해 요구되는 고통의 과정은 길 뿐 아니라 처절하기도 하다. 그래서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