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 중 자신이 언제까지 살다가 떠나는지를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눈 감는 시간을 안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저 세상 얘기로만 들린다. 대개 인간은 평균수명과 家族의 病歷 혹은 집안 어른들의 수명 등을 근거로 자신의 수명을 대충 짐작할 따름이다. 상식적으로 몸에 해로운 술과 담배 등을 멀리하고 매일 운동을 하고 정신건강까지 신경 쓰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만 없다면 남들보다 좀 더 오래 사는 정도이다.
간혹 남들보다 수십 년 빨리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자신으로 보나 가정으로 보나 큰 불행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장이 夭折하면 유가족들은 큰 곤경에 빠진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가입하는 게 종신보험이다. 하지만 사망 시 목돈이 나온다고 해도 정신적인 어려움까지 보상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누구나 최소 환갑 때까지는 생존하길 원하다. 그때가 되면 자녀들도 성인이 되어 가정의 우환도 적어진다. 현재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초고령자의 수도 증가한다. 병이 든 노인들 가운데 회생가능성이 없이 고통만 가중될 경우 몇몇 국가는 약물투여를 통한 적극적 安樂死를 허용하기도 하며 대한민국은 연명치료 중단 등 소극적 安樂死를 허용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죽고 사는 문제는 인간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지만 수명은 늘어가기만 한다. 그렇다면 장수는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과거 수명이 무척 짧던 시절에는 장수가 축복이었지만 의학기술이 발달한 현재 장수는 단지 장수일뿐이다. 장수하더라도 돈이 있고 건강도 유지된다면 큰 근심 없이 살 수 있겠지만 제대로 몸도 못 가누고 경제적으로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차라리 평화롭게 눈을 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수가 최소한 재앙이 아니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걸로 철저한 경제적 대비와 건강관리를 들 수 있다. 또한 한 번씩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知人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몰래 숨겨둔 자신만의 매력적인 愛人이 꼭 필요하다. 이는 립스틱을 짙게 바른 관능적인 異性이 아닌 혼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만나 즐길 수 있는 것들로서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활동이나 글쓰기와 같은 창작활동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長壽가 진정 祝福이 될 수 있는지는 이러한 애인들과 함께 하는 기쁨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교육을 통해 사회인이 되고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녀를 키워 독립시킬 때까지는 많은 拘束이 있다. 하지만 노후가 되면 많은 돈이 없이도 넘치는 자유를 누리게 되므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을 원 없이 즐기며 살 수 있다. 따라서 장수도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만일 골프나 바둑 혹은 어학 능력 등에서 특기가 있다면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멋진 노후의 모습이 되리라 보인다. 이러한 재미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 말없이 떠날 날만 기다리는 퇴물이 안 되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