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며 선선해지기만을 기다렸건만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이제는 추수철도 지나 논밭은 알몸을 드러낸 채 다음 농사를 기다리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아직 갈 곳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띈다. 그럴 때엔 쉴 공간이라도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해마다 낙엽이 뒹구는 가을, 그중에서도 晩秋가 되면 삶과 인간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푸르른 잎이 무성한 가지가 창공을 향할 때는 꿈에 부풀고 왕성했던 청춘이라면 잎이 떨어져 앙상해질 때에는 결국 백발노인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인간은 젊은 시절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세상을 자기 손안에 넣고픈 야망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기보다 중간에 이런저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시련을 겪기도 하며 雪上加霜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엔 하던 일을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간 소수의 사람만이 성공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영원하지 않기에 모든 걸 놔두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게 인생이다.
남녀관계란 것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처음 만나 마냥 서로 좋아질 때에는 세상이 온통 장밋빛 이건만 중간에 이런저런 시련이 생긴다. 서로 지내다 보면 한 번씩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특히 남자가 군입대를 할 경우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그럴 때 여자집에서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다른 혼처와의 결혼을 권하기도 한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해야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 사랑이 있는 결혼이라면 결혼 후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이혼하지 않고 百年偕老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晩秋는 삶에 있어서도 겨울을 앞둔 시기이기에 수명이 여든까지라고 가정하면 20대까지가 봄, 40대까지가 여름 그리고 60대까지가 가을이라 할 때 환갑인 지금 나의 나이가 바로 晩秋이다. 현재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이상과 현실 속에서 많은 煩悶의 시간을 보냈고 시행착오 또한 많았다. 과거 不惑의 나이 마흔이 이제는 예순이라고 할 때 이제부터는 惑할 일은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정신을 버려서는 안 되리라 보인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다 원숙하고 후회 없이 할 수 있다면 남은 나의 삶은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추에 떨어진 낙엽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