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PR 시대'라는 말이 나오면서 있는 것 없는 것을 총동원해 뭐든 좋게 포장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런 세태라면 잘난 것까지 감추다 손해 보는 일이야 적겠지만 거짓으로 과대포장하는 것까지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虛勢가 자신감으로 둔갑하고 驕慢이 자기애가 되어버린다. 거짓말은 희망사항, 과장은 포부이다. 또한 거짓말 다음엔 "아니면 말구", 속임 다음은 "속는 놈이 바보"가 따라붙기도 한다. '내로남불' 즉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보인다.
자기 PR 시대가 되면서 謙遜은 어찌 보면 美德이 아닌 어리석음이 되어버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겸손은 다소 소극적인 자기 PR이지 결코 자기부정이 아니다. 길게 본다면 겸손이야말로 자기 PR의 최고 경지일 수도 있다. 처음 만날 때에는 누구나 상대방을 잘 모르기에 누구라도 잘난 점을 잘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말하면 남들의 이목을 끌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거품은 제거되고 민낯이 드러나기에 內實이 없는 外華는 허풍으로 판명된다. 반면 처음에는 침묵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실력이 발휘되며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자기 PR이 되기도 한다.
자기 PR과 겸손은 겉으로는 크게 달라 보일지 모르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기 PR이란 말이 나온 취지도 원래는 과장된 겉치레라기보다 적극적인 자기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속된 말로 '뻥을 친다'는 것과 '자기 PR'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혼돈한다면 자유가 방종이 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과시를 무척 즐기는 부류가 있다. 그런 이들은 있는 것은 감추지 않고 떠벌이면서 없는 것까지 덤으로 붙이기도 한다. 특히 증거가 불분명한 것일수록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린다. 그러한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그런 이들은 변함없이 자기 미화에 힘쓴다. 반면 개중에는 자신에 관해서는 엄격하면서 남들에게는 관대한 이들이 있다. 요즈음 세상에 그런 이들은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지만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세상이 변해 과거 선비들이 미덕으로 삼던 남을 높여주고 자신을 낮추는 謙遜이란 덕목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자기 PR일지 모른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철학교수의 말에 의하면 영어에는 겸손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고 한다. 'humble (보잘것 없는)'이란 영어단어가 겸손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동양에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해 주는 속 깊은 의미를 대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서양을 쫓아가는 것에 무척 익숙해져 있다. 서양인들처럼 옷을 입고 그들처럼 혀를 굴리며 영어라도 구사하면 마치 세련되고 앞서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의 고유한 것들은 즉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서양의 것들보다 음미할수록 깊이가 있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제된 자기 PR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고 자기보다 상대를 높여주는 겸손은 인간 최고의 美德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자기 PR과 겸손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은가?"라는 질문은 愚問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말은 상반된 듯 보일지 모르지만 보완적인 의미도 있고 둘 다 훌륭한 의미를 가지는데 굳이 우열을 가려서 뭣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기 PR과 겸손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질문은 "페티김과 이미자 중 누가 더 훌륭한 가수인가?"라는 질문과 비슷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