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世俗化는 막을 수 없는 걸까?

by 최봉기

지하철에서도 묵주를 손에 꼭 쥐고 기도하는 이들이 보인다. 그들의 소망은 과연 뭘까?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 혹은 고시 합격, 배우자의 진급이나 사업 성공, 가정의 화목 등 安危만 바라는 건지 아니면 혹 어려운 이웃이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삶까지 염려하는지 궁금해진다. 주일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이들은 대개 초월적 존재에게 자신을 맡김으로써 세상의 憂患으로부터 안전하길 기원하리라 보인다. 굳이 교회가 아니라도 집에서 막걸리와 삶은 돼지고기를 상위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고는 "집신이시여! 우리 가족 편안하게 살도록 도와주소서"하고 빌거나 혹은 심지어 직장에서조차 돼지머리를 상위에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며 "우리 부서 좋은 평가받도록 해주소서" 하고 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후 인간을 에덴동산의 낙원에 살게 했는데 인간이 사탄의 꾐에 빠져 먹지 말라고 한 善惡果를 먹고 죄를 지어 낙원에서 추방되며 죽음과 병 그리고 의식주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이를 어여삐 여긴 하느님이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는데 예수는 십자가에서 죄인인 인간 대신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끊어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켰으며 그로 인해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는 병자를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키며 구름 같은 군중이 그 주변에 모인다. 하지만 그를 모함한 바리세이 등 세속적 종교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되게 한다. 하지만 예수는 사흘 후 부활하여 그를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와 절망 속에서 불안해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며 세상 끝날 다시 세상에 와서 인간을 심판할 것임을 약속하고 승천한다.


이렇듯 성서는 인간에게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며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 어디를 봐도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부자가 되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하며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복이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서의 내용과 달리 교회에서는 헌금을 하면 하느님께서 몇 배씩 되돌려준다고 하며 거룩한 성서의 원래 내용에 世俗的인 색깔을 칠하기도 한다.


또한 無所有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신약성서 위주의 설교는 헌금 모금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에 따라 구약성서를 활용하게 된다고도 한다. 구약에는 '十一組'란게 나오므로 이를 크리스천의 중요한 의무로 규정한다. 벽에 신도들의 십일조 납부현황을 붙여놓는 교회도 있다. 교회가 이러한 世俗的인 모습을 보이자 이를 비판하며 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교회는 인간이 구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소망뿐 아니라 삶 속에서 생기는 위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현실적 목적도 함께 가진다. 이런 이유로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는 신도들이 많이 모이고 번창하기에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만일 신도들의 수가 줄기 시작한다면 교회도 마치 시골의 폐교처럼 문을 닫을지 모르고 그리되면 기본생활을 위협받는 목회자들도 생길지 모른다. 따라서 성직자들의 설교 중에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헌금도 잘하면 세속적인 행복까지 누릴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 많아지게 되는 것 같다.


목회자들도 생활인이기에 기본생활의 안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유로 교회가 갈수록 세속화되고 성서의 본질이 왜곡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목회자들은 기본에 충실하되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생활을 위해 성서를 왜곡하기보다 필요하다면 부업이라도 하면서 기본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신도들의 경우에도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니 가정과 사업이 번창하게 된다는 식의 현실적인 종교관보다는 존재에 대한 감사와 희생 봉사를 통해 갈수록 오염되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그로 인해 세상에서 죄악에 물드는 사람들이 적어지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그리된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는 이들도 많아짐에 따라 굳이 성서를 왜곡하는 목회자도 적어지리라 보인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갈수록 세속화된다면 목회자들도 성서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예수는 율법대신 사랑의 계명을 전했고 재물을 창고 대신 하늘에 쌓으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판 바리사이들은 이렇듯 無所有를 외치며 자신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예수를 한번 더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고 하느님 대신 돈이란 우상을 숭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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