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은 왜 사서라도 하는 건가?
크리스마스이브 지리산 눈길 산행을 하고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 한 고생은 삶에 밑거름이 되어 올바르게 살게 하며 결코 해이함이나 방탕함 없이 성실한 자세로 삶을 이끄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은 이에게 고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젊을 때 고생을 했으니 이젠 자리 잡고 좀 편하게 지내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그다지 유익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환갑을 앞둔 나에게 모처럼 크리스마스이브에 1박 2일로 지리산을 등반할 일이 생겼다. 10여 년 전 혼자 무거운 배낭을 메고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40대 후반으로 지금보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나았을 뿐 아니라 초가을이라 등반하기에도 좋은 때였다. 반면 이번은 한겨울이라 눈 산행이었을 뿐 아니라 낮에는 며칠 전보다 날이 풀려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이른 아침과 밤에는 추위와 바람이 마치 칼춤을 추듯 우리를 괴롭혔다.
첫날 버스로 07시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3시간 반 이동하여 함양의 백무동에 도착해서 친구 둘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젠을 등산화에 채워 4시간 동안 5.8km 눈길을 걸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눈으로 덮인 지리산 상고제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가져온 라면과 족발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대피소에서 초저녁부터 누워 쉬었는데 잠도 잘 오지 않았고 한 번씩 제법 떨어져 있는 실외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은 곤혹스럽기만 했다.
다음 날은 흐려 해돋이를 보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출시간에 맞춰 5시 반경 대피소를 떠나 약 2km 눈길을 해쳐 천왕봉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기온은 더욱 낮았고 칼바람에 몇 겹으로 장갑을 꼈건만 손은 시리기만 했다. 어두움 속 눈 덮인 미끄러운 길에는 렌턴을 모자에 부착한 사람들이 앞과 뒤를 메웠고 어두운 산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한번은 훼매기도 하며 드디어 목적지인 정상에 도착했다. 구름이 많아 일출의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해가 뜬 후 환해진 길을 걸어 대피소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로 발열비빔밥을 먹고는 5km 거리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백무동까지 약 6km를 걸어 내려왔다.
이틀 동안 모텔도 아닌 수용소와도 같은 대피소에서 12km의 눈길을 약 12시간 동안 오르막 내리막을 가리지 않고 걸으며 젊지도 않은 나이에 고생을 사서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짐정리와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몸을 누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찾지만 한 번씩은 고생을 사서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암만 누추한 곳이라도 자기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말처럼 우선 집에서 먹고 지내는 생활의 안락함과 포근함은 눈길에서 떨고 대피소에서 서서 불편하게 식사도 하고 여럿이 좁은 공간에서 잠자며 추운 공기를 헤치고 화장실을 오가는 불편함을 겪기도 하며 진정 그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편안함을 떨치고 뭔가를 추구하려 할 때 진정 삶이 박진감 있고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느낄 수도 있게 된다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고생은 젊어서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한 번씩은 사서라도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젊어서란 말을 빼고 "늙어서도 고생은 때때로 사서도 한다"라고 바꾸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