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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5. 2022

살면서 지저분한 기억

나이를 먹고 군에 간 사람에게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나이 값 좀 해라"이다.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나이 먹고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당시 66년생이던 동생이 전역을 하고 나서이다. 입영통지서가 날짜보다 늦게 집에 도착, 허겁지겁 의정부 306 보충대에 도착하니 상병을 단 한 친구가 아직 사복에 긴 머리를 한 나에게 한 말이 "군대 늦게 올 곳 못 됩니다"였다. 그때부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참 아래 나이인 선임병들에게 온갖 불쾌한 얘길 들으면서도 참으며 군생활을 했다. 나는 7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늘 남보다 1년을 벌면서 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꼬여 버리고 졸지에 어린애들에게 놀림감이나 되었으니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군대의 경우 특히 어리면서 스스로 저학력 등으로 자기 비하감을 가지는 인간들 경우는 고학력자가 쫄따구로 들어올 경우 세상 사는 맛이 나는지 온갖 위세를 부리며 오래간만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나는 사단 교육대에서 고약한 조교 하나를 만났는데 그 인간은 나앞에만 오면 나를 타깃으로 온갖 모욕스런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의 위세를 마음껏 뽐내었다. 총검술을 교육시키는데 나이 먹은 한 훈련병의 서툰 몸동작을 보더니 "저래 가지고 대학원을 어떻게 졸업했어"란 말을 포함, 온갖 욕설 섞인 말을 뱉어 내었다. 그 인간의 선임들은 그가 나만 타깃으로 삼아 괴롭힌다는 걸 눈치채고 고맙게도 다른 조교로 교체해 줬다. 그 자의 한 선임은 따로 내게 슬쩍 "할만해? 혹 힘든 일 있으면 말해"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를 괴롭혔던 그 인간은 지금 어디선가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한다면 가해자 시절 피해자였던 사람 생각이 나지 않을까 싶다.


이문열의 '세하곡'이란 소설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 먹고 병으로 입대한 고학력의 지적인 병사가 둘 나온다. 그중 하나를 학력 콤플렉스가 있는 소대장 하나가 계속 괴롭히는데 도무지 참지 못한  사람이 소대장을 칼로 죽이려 한다. 그러자 다른 나이 먹은 동료가 말리면서 대신 보복해 준다. 야간 훈련 때 으슥한 곳에서 그 소대장을 몽둥이로 마구 구타해 버리는데  공비인 줄 알고 그랬다고 시치미를 떼 버린다.


그리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말처럼 시간은 가고 전역을 하여 취업을 했더니 내가 사원일 때 대리들이 나랑 동갑내기들. 거기서도 나이 차이로 인한 고충이 계속 이어졌다. 어떤 경우는 마치 군대에서처럼 설치는 놈도 있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내가 3학년일 때 삼수를 하고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고등학교 동기가 몇 있었는데 나는 좀 있으면 졸업한다고 하는데 인제 1학년이니 한참 아래로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묻혀 버린다. 대개 나이를 몇 살 더 먹고서 군대, 학교 혹은 직장에서 생활을 하려면 이렇듯 고충이 따른다. 하지만 그런 걸 감수하고 생활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리할 경우 갑갑해진다. 선배 직원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군대를 면제받은 이들도 있고 단기 복무자들도 있다. 결국 퇴직을 하고 인제 환갑 근처가 되어 인생을 되돌아볼 때 나이를 몇 살 더 먹고 비슷한 나이의 상사 아래서 손아래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라 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경우 외에도  별로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생기곤 한다. 흔히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고 한다. 더러운 일도 참고 더러는 임기응변도 발휘하면서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다. 극기를 하지 않고는 조직생활을 해 나 기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기의 중심을 지키고 불의와는 쉽게 타협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군을 갔다 온 다음 인간이 바뀌어 머슴티를 내거나 아니면 건달티를 내는 경우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험한 경험을 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본성은 늘 지키며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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