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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6. 2024

法으로만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인간과 法의 관계는 마치 범인과 경찰의 관계인양 냉랭하고 몰인정하기만 하다. 인간에게는 良心이란 게 있으며 또한 法 이전에 道德이란 게 있다. 따라서 인간이 상식에 근거하여 양심껏 산다면 사실 法이란 강제 규범에 의존하지 않아도 사회의 질서는 유지되리라 보인다.


하지만 평소에 선량하던 인간도 코너에 몰리면

거짓말을 하며 양심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기에 法이란 제재수단도 나오는 것이다. 인간들 간에 생기는 문제는 대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인간들끼리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물러나지 않으려 할 때 "法으로 합시다"란 말이 나오는 막장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사는 곳 중에서 도살장만큼이나 살벌하고 험악한 곳이 법원 근처라고 한다.


法을 잘 만들어 놓으면 사회의 질서가 척척 유지될 걸로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법 곁에는 法網이란 게 있기에 암만 완벽해 보이는 법이라도 악용 내지 오용되는 일이 있다. 따라서 法으로만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法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진다. 그 이유는 뭘까? 과거 못살던 시절에는 누군가가 어려울 땐 서로 위하고 돕는 마음이 있었건만 잘 살게 되면서 이웃이란 관계가 사라지는 냉랭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양심적으로 살면 자기만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살면서 피해나 보지 않으려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정의를 실천하거나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기에 문제가 생기면 대화대신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것이다.


또한 法이란 弱者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임에도 자칫하면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과거 1988년 11월 5공 청문회에서 재벌 총수를 증인으로 앞에 앉혀 놓고 한 야당 의원이 회사가 노조를 탄압했던 얘기를 꺼냈다. 노동현장에서 회사관계자들에 의해 끌려간 노조 간부에 대해 재벌 총수는 "노동자가 5만 명씩 되는 공단에서 그 정도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되받았다. 그러자 그 의원은 핏대를 올리며 "노동자들이 뭐라고 하면 노동법 바꿔 버리고 구속시켜 버리면 해 먹기 편하단 말입니다"라고 하자 회장은 중간에 말을 가로막으며 "그런 식으로 해서 사회가 되지도 않고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의원은 "제가 말을 하는 도중에 왜 가로막습니까? 제가 말을 좀 급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식의 말씀 증인으로 나온 분의 예의에 어긋난 행동입니다"라고 하며 說戰을 벌이기도 했다. 위에서 등장한 두 인물은 이미 모두 故人이 된 재벌 총수 정주영과 노무현 前대통령이다. 이들은 비록 한때 이해관계가 엇갈렸지만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렇듯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규범이지만 양심이나 도덕과는 한걸음 떨어져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운동이나 생활습관 내지 건강관리가 도덕이나 양심이라면 법은 藥과도 같이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사용하는 최후수단이 아닐까 싶다. "藥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法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과 일맥상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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