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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30. 2024

나의 '젊은 날의 肖像'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대학교 2학년 때 이문열작가의 '젊은 날의 肖像'이란 책을 읽었다. 독서량이 많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그 책이 보여준 지적 體臭는 나란 존재의 초라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작가는 48년생으로 서른 초반에 그 책을 집필했던 걸로 보인다. 그가 다루었던 자신의 삶은 크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검정고시 공부를 하던 때 (河口)와 대학을 가서 지적 방황 속에서 허무와 절망을 느꼈던 때 (우리 기쁜 젊은 날)그리고  도시를 떠나 탄광과 어촌 등을 떠돌던 때(그해 겨울)로 구성된다. 젊음의 방황 속에서 그가 깨닫게 된 건 "絶望은 존재의 끝이 아닌 시작" 이란 사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보는 작가 이문열은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명품에 비견되는 스토리 전개와 메시지 그리고 빼어난 글재주로서 남녀노소 할 것 없는 많은 애독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부친이 越北을 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현실적인 안정을 찾고자 갖은 고생 끝에 명문대학을 진학하지만 知的인 방황 속에서 대학을 중퇴한다. 하지만 그는 대학이 아니라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은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지성을 가진 이 시대의 대표 知識人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문열이 아닌 나란 인물을 '젊은 날의 초상'에 대입한다면 과연 어떤 내용의 글이 나올까? 우선 나는 자질이나 자라온 환경이 그와는 무척 차이가 있다. 藥士인 부친의 슬하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왔기에 어려서부터 갖은 고생을 했던 그와 다르다. 또한 나는 대학입학 전까지 평범한 두뇌로 대학입시를 향해 모든 힘을 쏟아부은 결과 再修를 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문열과 같은 난사람소리를 들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다.


당시 대학은 浪漫과 知性의 전당이라기보다 '입시학원'과도 같이 '졸업정원제'라는 제도 속에 피가 끓는 젊은이들을 가두어 놓고 학점이란 회초리로 한눈을 팔거나 수강과목 외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묶어 놓은 직업훈련소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떳떳하지 못하게 권력을 손에 넣은 이들이 눈에 가시와 같던 학생들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였지 않았나 싶다.


그런 현실이었지만 入試에만 매달리다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삶의 문제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여태껏 남의 땅에서 예속되어 소작이나 하던 삶을 탈피해 직접 씨를 뿌려 수확하며 풍년의 기쁨이든 흉년의 고통이든 스스로 감수하는 독립된 삶을 영위하고자 강연회, 도서관, 교회 등 여기저기에 문을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성공적인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시원한 해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 말 들으면 그때는 그럴듯했고 저말 들으면 또한 그때는 그럴듯했지만 돌아서면 공허함만 밀려왔다.


자신이 주연인 人生이란 드라마에는 자신이란 존재를 지켜주는 哲學과 더불어 현실적인 생존수단인 직업 그리고 삶의 반려자가 함께 한다. 따라서 젊은 날에는 삶의 고뇌 속에서 자기만의 철학을 정립하고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生業을 찾으며 결혼할 준비도 하는데 그 세 가지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땀 흘리는 이들에게 던져지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바로 군복무이다. 나의 젊은 날은 이 세 봉우리를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며 특히 이십 대 중반 이후에는 孤寂感과 不安感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다 20대가 지나자 나의 하늘을 뒤덮던 먹구름과 천둥 그리고 무서리가 사라지고 거울 앞에선 누님과도 같은 국화꽃 향기를 맡게 되었다.


예순이 된 이 나이에 젊은 날의 고뇌 속에서 가슴을 조이는 나의 아들과 딸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어봤는지 모른다. 머지않아 창공을 향해 비상할 이들이지만 젊은 날의 苦惱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만일 피한다면 알이 차지 않은 곡식이 나올지 모른다. 따라서 괴로움을 이겨내고 보다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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