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마찬가지로 먹고 배설을 하고 수면을 취하며 자식도 낳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특권을 누린다. 또한 짐승은 善과 惡을 판단할 능력이 없지만 인간은 善과 惡을 명확히 구분한다. 인간의 근본이 善한지 아니면 惡한 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세상에 흉악한 범죄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인간은 惡한 존재인 듯 보이지만 이따금씩 남을 위해 목숨을 던져 희생하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악해지기도 한다. 혹자는 밥을 먹을 때 간혹 돌이 씹히지만 그래도 돌보다는 밥알이 많고 세상에도 악한 이들만 있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착한 이들이 많아 세상이 이 정도는 유지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삶의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다 보면 인간 세상도 어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들도 惡이 아닌 善만 추구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저마다 核이라는 무기를 보유하며 만일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다. 심지어 만년 후진국에 머무는 북한은 자국의 국민들을 먹여 살릴 생각은 않고 核 하나만으로 주변국가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이렇듯 이해 못 할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최후의 발악을 하다 끝내 白旗를 들 날도 멀지만은 않은 듯하다. 최초로 핵을 개발했던 나라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했다. 그 후 많은 국가가 너도 나도 핵을 보유하며 유세를 했지만 핵도 만병통치약은 아닌듯하다. 과거 蘇聯은 핵을 갖고도 주변 위성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결국 상실한 걸 보면 핵은 보유만 할 뿐 사용은 불가한 무기가 되어버린 듯싶다.
인간은 짐승들과는 다른 고차원적인 지능과 品格을 가지고 있건만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이는 개인 혹은 국가들이 자기 잇속만 차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짐승들은 자기보다 약한 동물은 죽여버리고 자기보다 강한 동물에게는 잡아먹히는 반면 인간은 약자 앞에서는 마찬가지로 흉폭해지다가도 강자 앞에서는 승산 없는 싸움을 피하며 실속을 찾는다는 점에서 짐승과는 다르다. 또한 짐승은 생명이 있는 다른 짐승을 죽여 배를 채우고도 당연해 하지만 인간은 양심의 가책이란 게 있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누군가를 해칠 경우 자책감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
한편으로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대량학살하고도 이를 정당화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사실 짐승보다 못하다. 히틀러는 독일인들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미움을 사던 유태인들을 어린애들까지 가리지 않고 600만 명씩 학살하고도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는 본능적으로 다른 동물들을 해치며 생존하는 짐승보다 더욱 악랄하고 교활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전쟁과 독재 혹은 虐殺과 같이 인간이 저질러온 만행들이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아직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일들의 중심에 철저한 '이기주의'와 '자기 합리화'가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뛰어난 두뇌로 핵무기도 만들고 자기보다 힘이 센 짐승들까지 굴복시켜 동물원에 가둬놓고 구경도 하지만 진정 굶거나 집도 없이 떠도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데는 너무나 인색하다. 또한 권력과 돈을 손에 넣는 것에는 탁월한 英敏함을 보였지만 그것들은 영원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망치는 毒도 된다는 사실에는 무척 둔감하다.
앞으로도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불행을 자초하기보다 욕심을 버리고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지도층일수록 특권을 과시하기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봉사해야만 한다. 春香傳에서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해 御史가 되어 남원에 내려와서는 백성의 삶은 외면한 채 酒色에 빠져있던 현감 변학도에게 '金樽美酒千人血'로 시작되는 한시를 써서 보여준다.
금술잔에 담긴 아름답게 빚은 술은 천명 백성의 피요
옥쟁반 위의 맛 좋은 고기안주는 만백성의 살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니
풍악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도 높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