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가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더 낫다는 건 대개 더 좋은 걸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차를 몰며 더 좋은 집에서 사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거꾸로 淸貧한 삶을 추구한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타는 차나 집도 중류나 중하류 정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집은 타워팰리스 대신 주공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차는 벤츠나 BMW 대신 소나타나 프라이드를 타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마치 조선시대 선비와도 같은 생활을 하려 하는 이가 혹여나 나타난다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줄을 이을지 모른다. 오히려 과거 못 살 던 때라면 몰라도 근래에 들어와 淸貧을 추구하는 이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반면 세금을 어떻게 줄일까 하는 이가 많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이라면 몰라도 사회에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남들보다 쪼들리는 생활을 해봤거나 그런 걸 마다하지 않을 마음이 있어야 하리라 보인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1980년대 중반에는 만화바람이 불어 영화만큼이나 히트를 친 만화가 있었고 나도 그중 몇 권의 만화를 즐기곤 했다. 당시 대박을 친 만화가가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와 '신의 아들'의 '박봉성'이었는데 나는 두 만화 외에 박봉성의 '아버지와 아들'이란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 만화의 주인공인 '최강타'는 재벌가의 외아들로 나오는데 그는 다른 재벌가의 아들들과 어울리며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호화로운 유람선위에서 파티를 벌이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낸다. 그 와중에 그의 집은 한순간 風飛雹散난다. 부친의 회사가 갑자기 부도나며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후 그는 부친과 전세방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바닥생활을 하고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생활고를 몸소 체험하며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부친이 방탕한 아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그의 뒤를 잇는 진정한 경영자로 만들고자 일부러 조작한 것이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특히 오만해지거나 권위적이기 쉬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중요한 도덕적 덕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영국의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특권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어릴 때부터 닭장청소 등 귀찮고도 험한 일을 하도록 시킨다고 한다.
존경받은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꽤 많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집안의 배경에 힘입어 출세한 이들에 비해 소신과 추진력이 남다르지만 부유하게 지냈던 이들과는 달리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배고픔을 몸소 겪어본 이들은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가슴속 깊이 알기에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이 主人인 세상이 돈 중심으로 바뀌다 보니 인간이 중시해 온 정신적인 가치는 좋은 집과 좋은 차로 바뀌어 버렸다. 한때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하며 매일같이 노래를 부르며 경제개발에 매달림으로써 그 지긋지긋하던 가난으로부터는 벗어나게 됐지만 그다음으로 벗어나야 할 것들이 다시금 나타났다. '물질만능주의'와 '향락주의' 그리고 '이기주의'이다. 멀지 않은 이웃 가운데 누군가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고속에서 일가족이 삶을 포기하려 하는데도 무관심하고 자기 배만 불리려 하거나 향락만 쫓는다면 이를 두고 인간이 사는 곳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이 많은 이들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갑자기 가난한 생활로 돌아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마음을 가져보기라도 하거나 이를 조금이나마 실행하는 이는 과연 나올 수 없는 걸까? 만일 그리 된다면 세상은 開壁을 할 걸로 보인다. 또한 자신이 이룬 부가 자식에게라도 진정 유익한 삶의 수단이 되게 하려면 부의 증대뿐 아니라 淸貧의 미덕까지 더불어 깨닫게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