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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Jun 16. 2024

픽션 같은 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면?

논픽션과 픽션은 전혀 다른 것이다. 논픽션은 실제 일어난 사실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며 픽션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虛構的인 이야기이다. 픽션은 실제 스토리는 아니지만 상상력이 빚어내는 재미가 논픽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숨 막히는 스토리가 막을 내릴 때의 느낌은 마치 꿈에 취했다 깨어나듯 얄궂은 기분이 되기만 한다. 이렇듯 픽션과 논픽션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지만 지나간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마치 창공을 나는 비행기에서 눈에 들어오는 땅 위의 온갖 점과도 같은 物像들처럼 시간은 과거의 일들을 티끌처럼 만들어 버리고 사실과 허구의 초점까지 흐릿하게 하는 듯싶다. 논픽션인 인생을 마치 픽션처럼 사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을 '로멘티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삶은 現實主義者라는 이들의 눈에도 픽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논픽션도 아닌 그 둘의 중간 정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순간순간 나름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그것도 엄격한 계획과 통제 속에서 하며 살지만 時時刻刻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茫茫大海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浮草와도 같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완벽한 논픽션의 주인공이 될 조건을 갖추지는 못한다. 또한 인간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유행가 가사의 下宿生과도 같이 자신을 잘 가누지 못한 채 스스로 집주인이 아니라 매달 하숙비를 내며 남의 집에 얹혀서 사는 존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따라서 삶이란 스토리도 자신이 겉으로 주인공이긴 하지만 자신 아닌 누군가에 의해 써지는 픽션과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보면 과거에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는 상황이 종료되고 차분해진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미성숙 혹은 이상과 현실 간 괴리감 등과 같은 怪物에 의해 농락을 당했기에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을  迷夢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의미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얼떨떨한 태이다.


삶이란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펼쳐진 마치 픽션과도 같은 스토리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는 여성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초반의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한 여성을 만나 順情을 바쳐 사랑했지만 그녀는 교제해 본 경험도 남자보다 많고 현실적이라 그의 마음을 헤집고 다니며 마음을 주는 척하다 결국 현실적인 조건이 썩 맘에 차지 않자 비웃기라도 하듯 애매한 클로징멘터를 남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에 큰 상처를 받은 남자는 허탈한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키며 현실을 모른 채 방황만 했던 자신을 냉철하게 보며 한결 성숙한 사람으로 바뀐다. 한편 불나방처럼 다른 불빛을 찾아 이동한 여자는 누군가의 소개로 의대졸업생을 만나 과거의 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꽃길만 꿈꾸며 웨딩마치를 올린다. 하지만 여자 앞에 펼쳐진 길은 꽃길이 아닌 가시덤불이었다. 남자가 힘든 과정을 겪던 시간 동안 여자는 임신만 하면 流産을 거듭한다. 그녀는 임신을 하기 위해 별별 방법을 동원했지만 여의치 않은 채 마치 형집행을 받는 罪囚와도 같이 남들은 쉽게 갖는 자녀를 갖지도 못한 채 고독한 수형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남자가 현실적인 안정을 찾자 그제야 그 여자도 형집행을 마치고 밝은 태양을 보며 자녀를 갖게 된다. 만일 시간이 흘러 우연히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과연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까? 머쓱해하며 두리번거릴 여자를 향해 남자는 과연 어떤 대사를 읊조릴지 궁금하기만 하다.


또 하나의 스토리에서는 흔치 않은 사랑의 경험을 가진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20대 때 한 여성과 교제를 한다. 그녀의 生母는 신체에 장애가 있었고 자식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자신의 여동생 집에서 딸을 자라게 한다. 따라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生母의 존재는 알지도 못한 채 이모를 엄마로 알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슬픔이 복받쳐올라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결혼에 골인하지는 못한 채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길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면 또한 어떤 대사가 나올까?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마치 픽션과도 같은 스토리가 일어나곤 한다. 1972년 5월 한국전쟁 이후 원수가 되어 反共을 내세우던 남한과 도발을 일삼던 북한 간에 평화회담이 개최된다. 또한 같은 해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적대국이던 중국을 방문하는 일 또한 생겼다. 과연 누가 이런 일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또한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손에 넘어간 후 처음엔 저항도 했지만 조선이 일본의 거의 완벽한 속국으로 전락하자 조선의 독립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에 패망함에 따라 해방은 픽션과도 같이 찾아왔다.


74년 전 전쟁이 발발한 후 아직 휴전상태인 남북관계는 과연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까? 픽션과 같은 스토리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이 몰락의 길을 걷다 도저히 핵무기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하에 드디어 남한에게 통일을 제안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만'은 2030년 이내에 남북한은 통일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북이 통일된다는 걸 예상하는 이는 현재 조지프리드만 외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픽션 같은 스토리가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리만 된다면 현재의 청년실업에 인구감소 등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통일된 한반도의 국력은 머지않아 세계 2~3위 수준으로까지 도약할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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