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되는 국민가요 최희준의 '하숙생'은 1965년 라디오 드라마 '下宿生'의 주제곡으로 탄생해 이젠 환갑이 되어버렸다. 드라마 '下宿生'은 어느 하숙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위해 빚어내는 喜怒哀樂을 다룬 일일연속극이었다고 한다.
下宿집이란 곳은 대개 여관처럼 호화롭지도 번지르하지도 않은 여러 방에 숙식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거하는 곳이다. 20대들이 모인 대학가의 하숙집에는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젊은이들이 기거하며 간혹 술도 마시며 삶과 낭만 그리고 정치와 연애에 관한 다양한 대화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가볍게 나누기도 한다. 대학가의 하숙생들 중에는 훗날 정치가나 사업가 혹은 학자나 문인 같은 유명인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환갑이 된 나는 낭만을 즐기는 나이는 지났는지 下宿이란 단어를 대하면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머리에 우선 떠오른다. 대학교 주변에 모여있는 하숙집이란 곳은 대개 여유가 없는 주인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상대로 크지도 않은 방 하나에 둘씩 배정해 놓고 하숙비를 받으면 일단 돈벌이 몫을 뺀 나머지로 식탁을 차리기에 하숙비 내는 날 가까이에만 반짝 밥상이 번지르해지곤 한다. 그때까지 반찬이 형편없으면 예상치 않은 공실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에 그러하다.
이렇듯 하숙집은 제대로 갖춘 가옥에 정착하기 전 임시로 머무는 곳이기에 情을 두거나 미련을 둘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인생을 하숙집에 비교한다는 건 우리의 삶도 영원하지 않고 잠시 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는다. 그러니 한평생을 살면서 자기 잇속만 차리다 남들에게 손 까락 질 받는 일 없이 조용히 살다 가는 게 인생살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살면서 한 치의 양보라고는 모르는 깍쟁이들이 더러 있다. 남들이 어려워 어쩔 줄 몰라할 때에도 자기 잇속만 차리기 바쁜 이들을 곁에서 본 일이 있는데 이들은 어떨 땐 타고난 연기자와도 같이 딱 잡아떼기도 하고 능청을 떨기도 한다. 그런 인간들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때엔 과연 어찌 대응하는지 은근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삶은 넓게 볼 때 자신이 남에게 준 도움은 마치 적금과도 같이 어려운 때가 되면 언젠가는 비슷한 도움을 받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손을 벌리고 정작 돌려줄 상황이 되면 안면을 몰수하는 치사한 인간도 있다.
또한 인생은 어찌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평생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모아 둔 돈을 눈 감을 때가 되면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평생 머리에 넣어둔 지식이나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하니 돈도 지식도 인간도 자기가 건강하게 사는 동안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렇긴 해도 돈이나 지식은 자신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서 때로는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사실 피 하나도 섞이지 않은 남에게 자신이 어렵게 모은 재산을 내어놓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空手來空手去'란 말처럼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건 결코 손해 본 일은 아니다.
나도 한창때엔 주관과 개성뿐 아니라 분별력과 호불호의 기준도 꽤 분명하였다. 지금도 병역문제와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원칙대로란 생각에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또한 북한을 미화하는 것과 같은 현실성이나 분별력이 결여된 주장은 극도의 혐오감을 부추기만 한다. 하지만 과거에 엄격하기만 했던 親日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누그러진 태도가 되기도 한다. "나라가 빼앗긴 상황에서 살기 위해 그런 거지 누가 원해서 그랬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잠시 기거하다 알지도 못하는 어디론가로 떠나는 나를 비롯한 인생의 하숙생들이여! 함께 기거할 동안 마음을 담은 진솔한 대화도 나누고 서로 도움도 주고받으며 지내되 저 세상에 가져가지도 못하는 돈을 자기 주머니 속에서 썩게 하기보단 일부는 절박한 이들을 위해 내어놓는 건 어떨까?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지기만 하는 건 잠시 머무는 나그넷길과도 같은 인생을 마치 정착해서 영원히 사는 걸로 착각하기에 그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