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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5. 2022

한 코미디언의 인생 스토리

고 이주일을 생각하며

인간의 삶이 여유가 없을 때는 빡빡한 생활 속에서 뭔가 돌파구로서 웃음 혹은 폭소라는 게 필요하다. 70년~ 80년대 때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못 살 때 빡빡했던 생활 속에서 각별한 인기를 끌었던 것이 프로복싱과 코미디였다. 과거 대표적인 헝그리 스포츠였으면서 온 국민이 열광했던 복싱은 인제는 거의 한물갔다. 제일 큰 이유가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돈벌이할 프로 스포츠가 많은데 왜 굳이 얻어맞는 복싱을 하려 하겠는가?


70년대부터 TV 보급이 본격화되며 그전 지방을 돌며 공연을 하던 악극단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악극단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 밤무대나 TV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등 인기 코미디언들에겐 TV가 기회의 무대였다. 이들은 70년대에 최고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 80년대가 되자 평생 무명생활만 하던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이주일. 그는 주로 악극단에서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다 TV 코미디언이 되려고 지원을 했는데 오디션만 하면 불합격. 이유는 얼굴 자체가 남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에게 기회가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1981년 이리역 폭발사건. 당시 공연극장 천정이 무너지며 후두부가 함몰되는 부상에도 가수 하춘화를 업고 구해냈던 일을 계기로 인기 최정상이던 하춘화가 생명의 은인인 그를 자기 공연 때마다 진행자로 일하게 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코미디계 대부라는 김경태 PD에 발탁되어 드디어 TV 프로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론 유명해지며 삶의 빛깔이 달라진다.


한 번은 1억짜리 수표를 받아서 집에 가져왔는데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때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 훔쳐갈지 몰라서였다고 한다. TV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졸지에 유명해지니 무슨 놈의 친척이 왜 그리도 많습니까?" 그리고 "밤무대에서 마치고 나오면 밖에 과거 달동네 살 때 이웃집 살던 사람이 와서 치료비가 필요한데 도와 달라고 하는데 모른 체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인기가 급상승할 때 코미디계 선배였던 한무가 "주일아 오랜만인데 술이나 한잔하자"라고 했는데 그는 "난 술 마실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라고 했다가 한대 얻어맞기도 했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지니 여기저기서 영화 출연 제의가 쇄도했고 그가 나오는 영화마다 흥행 대박. 그는 한해에도 몇 편의 영화를 하며  돈을 긁어모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태원의 호텔 하나를 인수하며 재력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2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후 7대 독자이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 그 후로 담배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다가 2001년 폐암 선고를 받고 2002년에 세상과 이별하였다. 폭음과 폭연이 너무 심해지자 후배 코미디언들이 "형 그러다 오래 못 살아"라고 하자 "내가 이거라도 해야지 도저히 괴로워서 못 살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한때 금연 광고에 나와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 아직 담배가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끊으세요. 꼭 끊으셔야 합니다. "


그가 무명시절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연예부 기자가 하춘화를 취재하러 가면 그가 밥도 못 먹고 혼자 방을 지키고 있었다는데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면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가수 박일남의 경우 자신이 악극단을 운영할 당시 이주일이 공연 사회를 맡았다고 한다. 박일남은 공연이 끝나면 혼자 쓸쓸하게 있던 이주일에게 술을 사주곤 했는데 술 마실 때 노래를 불러 달라 해서 부르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주일은 유명해지자 박일남을 한 회식자리에 초대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이분은 제가 가장 힘들 때 저를 많이 도와주었던 분입니다"라고 말하며 사람들 앞에서 큰절을 했다고 한다.


무명시절을 거친 연예인은 한 둘이 아니다. 가수 최성수, 설운도, 배일호, 영화배우 독고영재 등.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참고 기다린 결과 유명 연예인이 되었다. 코미디언 이주일 경우도 나이 마흔이 되어 삶의 궤적이 바뀌었다. 그의 자전적 인생 스토리가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라는 책이다. 그는 무명시절 동안 고생도 했고 주변에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움도 주었기에 후배 연예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했다. 그가 무명의 딱지를 떼게 된 사건이 하춘화를 목숨 걸고 구해 준 일 때문이라는데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늘도 도와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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