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롭고 권태로운 다람쥐 쳇바퀴와도 같은 일상에서는 뭔가 쇼킹한 일이 벌어지길 바라는 심리가 꿈틀거린다. 전쟁터에서는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해지며 또한 폭우가 쏟아져 水災라도 발생하면 살림살이가 유실되거나 못쓰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하지만 살면서 그런 암울한 때도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기에 시간이 흘러 생활이 안정되고 풍년이 되면 농촌에서도 풍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묻어난다. 이렇듯 삶이 안정 모드에 들어가면 草根木皮로 궁핍한 생활을 할 때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스포츠와 음악을 포함해 문학이나 예술과 같은 것에도 관심이 간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이 대개 여유로울 때 즐기는 지적 혹은 미적인 활동이다. 특히 수준이 있는 이들은 문학과 철학 혹은 예술에 관한 품격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시를 창작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러한 창작이나 예술활동은 무척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구속 없는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척 큰 희열을 느끼기도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낭만주의자가 된다. 이러한 창작 혹은 예술 활동을 즐기는 이들 곁에 자주 등장하는 게 술이다. 술은 창작활동이나 예술활동에서 느끼는 황홀함을 배가 시켜주기도 한다. 중국의 詩仙이라 불리는 이백은 술에 취해 長江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까지 있다.
문학과 예술이 아니라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낭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한두 곳이 아니다. 현실적인 틀속에 갇혀사는 이들은 누구나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아니라 창공을 향해 마음껏 날갯짓하는 독수리가 되고픈 욕망을 가진다. 이러한 자유의 냄새가 풍기는 것 중에는 영화나 연극이 있으며 TV나 라디오의 CF에도 뭔가 파격적인 문구나 영상은 갑갑한 현실 속에서 잠시 청량감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1964년에 나온 영화 '맨발의 청춘'은 뒷골목의 건달과 외교관의 딸사이의 사랑을 다룬다. 이런 비현실적인 스토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발동하며 억눌린 자유를 찾고자 하는 낭만의 도가니 속으로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한다.
청소년들의 엽기적인 모습을 낭만적이라고 보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낭만의 전단계 정도로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다. 유흥업소 출입이나 성인영화 관람과 흡연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따라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 전자기타나 드럼을 가져가 연주를 하고 몰래 술도 마시고 춤을 추며 모처럼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한다. 또한 10대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거나 10대인 남녀가 어둑한 공원의 한편에서 입맞춤을 하는 모습도 어설프게 보이지만 어른들 흉내를 내며 성인이 되기 전 유사 낭만을 체험하는 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살과 같은 과격한 행동도 도무지 수용하기 힘든 현실에 정면 도전하는 점에서 본다면 어둡긴 하지만 이 또한 낭만의 발동일지 모른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고자 할 때 할복자살을 하기도 하는데 과거 3 공화국이 영구집권을 도모할 때 1975년 서울농대에서 일어난 성토대회에서 자살을 하는 살벌한 일이 벌어졌다. 4학년 김상진은 단상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후 미리 준비한 칼로 자신의 배를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앰뷸런스로 이동할 때 친구들에게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했으며 혼수상태에 빠진 후 사망했다. 현실 속에서 불의와는 결코 타협 않겠다는 의지는 결국 자살로 이어진 것이다.
갑갑하고 지루한 현실을 탈피하고픈 심리 속에서 잉태된 낭만은 늘 인간 곁에 머무르며 삶에 활력과 재미를 제공해 왔다.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챗GPT의 활용도가 확대되며 삶이 갈수록 편리해지긴 하겠지만 인간이 찾고자 하는 자유에의 열망과 낭만까지 이러한 것들에 의존하긴 힘들지 모른다. 따라서 새로운 차원의 낭만 속에서 인간의 체취를 느낄 일이 많아지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