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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7. 2022

국민드라마 '아씨'와 '여로'에 관한 추억

우리 집에서 TV를 구입했을 때가 1970년이었는데 그전에 다른 집에 가서 TV를 시청할 때와 달리 안방에서 시청할 때의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나는 만화영화 등 초저녁 어린이 프로를 주로 보았지만 어른들은 저녁시간 TV 드라마를 애청하였다. '아씨'(1970.3~1971.1)란 드라마가 당시 TBC에서 절찬리 방영되며 안방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1930~1950년 시골의 양반집 아들 긍재 (김세윤 분)이란 남자에게 시집온 아씨 (김희준 분)이 서울에 유학 가서 여자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냉대하던 남편에게 인내와 순종의 자세를 보이며 묵묵히 시집살이를 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부모를 봉양하며 시간은 흘러 객지에서 남편이 사망하고 시부모도 세상을 떠난 뒤 집안을 지키며 혼자 쓸쓸히 여생을 보내는 스토리다. 아씨가 높은 시청률을 보였던 이유는 자기희생으로 일관해 온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운명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깊은 동정과 공감 때문이었다. 당시 아내에게 애를 먹이던 역할을 맡은 김세윤은 그 후에도 유사한 역할은 단골로 맡았던 걸로 기억되고 김희준이란 배우는 그 후 TV에서 보기가 어려웠다.


1997.10~ 1998.3년 아씨 리바이벌이 이응경, 선우재덕 주연으로 방영되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시대가 바뀌었고 여권이 신장되며 남녀 간 평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어졌기에 그러했던 것 같다.


KBS(1972.4~12) 방송의 드라마 '여로'는 가난한 집안 출신 분이 (태현실 분)은 집안을 도우려고 술집에 팔려간다. 거기서 사기꾼 김달중을 만나 그의 중매로 시골 부자 최 주사 댁 며느리로 들어간다. 최 주사 아들 영구(장욱제 분)는

저능 아면서 몸도 불편한데 순이는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모신다. 그리고 최 주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도 낳는다. 하지만 그 집 시어머니이자 영구 계모 (박주아 분) 은 그 딸과 함께 분 이를 천대하고 구박한다. 아무리 천대해도 분이가 흔들리지 않자 그들은 과거 분이가 술집에 있었다는 것을 최 주사에게 일러바치고 결국 분이는 아들까지 남겨둔 채 집을 쫓겨난다. 쫓겨난 분이는 전쟁의 와중에서 설렁탕집을 해서 큰돈을 번다. 그리고 번 돈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 이러한 분이의 선행이 알려져 신문에 미담 기사로 나오며 이 기사를 최 주사 댁 식구들이 보면서 분이의 행방을 알게 된다. 한편 시댁 최 주사 댁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죄다 날리고 가족이 거지와 같은 생활을 하지만 분이 와 극적으로 다시 만나 재결합하여 행복을 되찾는다.


당시 여로는 시청률이 70% 이상을 넘어섰으며 여로를 방영하는 시간에는 차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거리가 한산했고 극장에서도 이 시간대에는 영화 상영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여로가 종영을 한 뒤 영구 장욱제와 김달중 역을 맡았던 탤런트는 탤런트 생활을 접게 되었다. 장욱제는 바보의 이미지가 너무 깊이 각인되어 다른 역을 맡을 수가 없었고 김달중 역 배우는 길에서 애들이 "저놈 죽여라 "하면서 돌을 던지는 통에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 워낙 더러운 역을 맡다 보니 본의 아니게도 시청자들로부터 저주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상 70년대 초 갑갑하던 시절 안방에 큰 감동을 전해 주었던 2개의 국민드라마 '아씨'와 '여로'를 스케치해 보았다. 만일 지금 여로를 리바이블한다면 시청자의 반응이 어떠할까? 70년 초 당시 20~40대 애청자는 50년이 지난 지금 70~ 90대가 되어 있다. 이들도 그때 가지고 있던 드라마에 대한 미각을 어느 정도나 가지고 있을지 두고 볼 일이지만 그 시절 저마다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보니 안방극장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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