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더불어 지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남들의 간섭 없이 혼자서 재미있게 산다면 좋겠지만 그리 살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마음이 맞지 않는 누군가와 지내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에는 어찌해야 하는가? 가정에서도 부부끼리 얼굴조차 마주 대하기 싫어진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노력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이 엇박자만 난다면 결국 이혼이란 법적 수단을 강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35년 전 객지에서 공부를 할 때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마음이 잘 맞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기거한 적이 있었다. 살다 보면 길에서 마주칠 일이라도 없었으면 싶은 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경험을 그때 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였는데 막내로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잇속만 차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건 적극적으로 요구를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엇박자만 돌며 속이 타들어가던 차에 한 번은 귀에 거슬린 말로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던 그에게 나는 처음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바퀴벌레가 나오기에 바퀴벌레 퇴치용 알약을 구석에 몇 개 풀어놓았는데 그는 좀 많이 풀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도 바퀴약 살 때 몇 푼을 냈다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발끈해서 부엌 바닥에 바퀴벌레약을 죄다 퍼부어 버리고는 내 방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부엌에서 그 장면을 본 그는 그제야 약간 당황한 듯 내방으로 와서는 자초지종을 묻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런 인간과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괴로워 나는 결국 거처를 옮겼다.
이런 식의 졸렬한 이기주의자도 있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 자기 잇속을 차리는 한 단수 높은 이들도 있다. 나 앞에서는 사탕발림 같은 얘기로 친한 척하며 나를 이용해 먹고 돌아서서는 내 흉이란 흉은 다 보고 다니는 인간이 그러하다. 세상경험이 적을 땐 눈앞에 보이는 게 다였지만 그런 걸 경험하고는 옆과 뒤에도 눈을 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와 격리된 군대란 곳에는 한 내무반에 많은 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나이, 학력, 출신지역도 다양하지만 인간성 또한 천자만별이다. 전입온 신병의 주머니를 뒤져 챙긴 돈으로 PX에 가서 늘 군것질을 즐기던 선임병도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어린 조교 하나가 대학원 졸업자였던 한 늙은 훈련병에게만 온갖 욕설을 퍼부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자신의 학력 콤플렉스 때문이었던 것이다. 계급과 명령이 전부이다 보니 늦게 입대한 이들은 한참 동생벌되는 이들에게 시달리지만 참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졸병 때는 휴식시간만 되면 내무반밖으로 불려 나가 시달리다 보니 차라리 전쟁이나 터져버렸으면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할 때는 자기밖에 모르는 상사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능력이 별로 없으니 윗사람 눈치만 보고 아랫사람에게는 헛기침만 하며 명색이 팀장이란 이가 책임질 일은 아래로 떠넘기는 것이었다. 능력이 있고 아랫사람을 아끼고 키워주는 훌륭한 상사를 만나기는 왜 그리 힘들었을까?
유쾌했던 기억은 쉽게 사라져 버리지만 싫은 인간과의 떨떠름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는커녕 바퀴벌레처럼 고도의 번식력을 발휘하기만 한다. 조금만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남을 배려할 수 있다면 사람들 간의 관계는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며 자기밖에 모르고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싫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싫은 인간들을 안 만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지 모른다. 그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이 남에게 싫은 사람이 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살면서 좋은 사람만 만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싫은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미련하게 참지만 말고 나름의 적절한 해결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도 저도 도무지 방법이 없다면 서로 보지 않는 것도 괜찮은 대안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