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뭔가를 하려다 이루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 '입시'와 '사업'도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낙방 내지 실패가 되기도 한다. '사랑'의 경우는 어떠한가? 실패란 의미가 왠지 생경하게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누구나 이루어진 사랑은 결혼과 가정이란 진행형으로 이어지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은 삶의 뒤안길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도 이루어지면 성공이고 이루어지지 못하면 실패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순수한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성공과 실패가 늘 교차한다. 만일 실패라고는 경험해보지 않고 꽃길만 걸어온 이가 있다면 과연 삶에 대해 나눌 말이라도 있을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실패의 아픔이 뭔지 모르는 이가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풍랑 속에서 생명의 위협조차 느껴보지 못한 이가 항해에 대해 거창하게 목청을 높이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사랑도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을 놓고 쟁취한다고 표현한다면 링 위에서 상대를 힘으로 눌러 이기는 사랑도 나올까 두렵다. 사랑은 나름 끌리는 이유가 있어하는 것이지만 사랑의 본질은 '~때문'이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라고 한다.
실패는 아쉬움과 슬픔 혹은 분노의 감정까지 부르지만 시간이 지나 그리 되었던 과정을 떠올리면 그 이유와 정황들이 머리에 그려진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일들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잘 세워 성실하게 노력하면 대개 목표한 결과를 갖게 되지만 사랑은 약간 다르다. 한쪽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두 사람 간 스타일이나 추구하는 것들이 다르다면 별 진전이 없이 제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따라서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남다른 인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한 이루어진 사랑이라고 해도 모두 결혼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세상이 아름다워만 보이고 열정이 남다른 20대 초반은 낭만과 순수함 속에 빠져 살지 모른다. 하지만 낭만에 흠뻑 젖어 사랑에 빠져도 보지만 아직 직업도, 가진 돈도 없이 가슴 한편에는 공허함과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러다 몇 년간 군복무를 하며 격리된 생활을 하다 보면 피 끓던 청춘의 아이콘이던 순수함이나 낭만도 시들어 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군복무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고 먼 걸음 면회까지 오던 누군가의 발걸음도 끊어진다.
20대 때 한 번씩 경험하는 '첫사랑'은 이루어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20대 때는 현실과 괴리되기 쉽고 그 와중에 경험했던 첫사랑은 마치 삶의 전부처럼 느껴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삶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안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고 꿈같은 얘기만 하는 남자보다는 안정된 직업과 기반을 가진 남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부조화 속에서 첫사랑이란 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하나의 추억 내지 쓰라린 기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특히 남자에게 있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여자와는 다를지 모른다. 여자는 지나간 일을 남자보다 빨리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가지만 남자는 그 아픔을 꽤 오래 간직하며 산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였던 한 인물은 결혼 전 동거를 하던 첫사랑이 과거 공산주의자 전력 때문에 붙들려가서 고문을 당하던 그를 버리고 떠났을 때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고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키워지기에 모성애를 늘 그리워하며 산다. 비록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갖게 된다고 해도 마음 한 켠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요컨대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란 건 어찌 보면 동기는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결과는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씁쓸하기만 하다. 인간은 산소만이 아닌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순수함 하나만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삶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로 남는 것일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으로 차있던 한 인간의 모습을 담은 지나간 날의 그림이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