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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누릴 수 있는 평화란 과연 어떤 걸까?

by 최봉기

고함치듯 거친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와 삶의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다 결국 눈을 감을 때까지 인간이 누리는 평화로움이란 과연 어떤 걸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이라면 봄이 되어 논에 물을 대고 물이 고인 논바닥에서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 되면 땡볕아래 벌레나 잡초와 싸운 다음 추수를 마칠 때 평화로움을 잠시 느낀다.


이렇듯 순환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게 "어제 흘린 땀이 있어 오늘 평화로울 수 있고 오늘 흘린 땀이 있어 내일 평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처럼 남들이 땀을 흘리며 일할 때 땀을 흘리지 않은 결과는 한마디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하지만 암만 노력을 해도 벌레나 자연재해 등으로 흉년이 온다면 평화로움이 일순간 우환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화란 건 보장이 없기에 현재 누리는 평화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무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험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험을 앞두고 잠을 설치며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정진해 온 이라야 합격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무한경쟁 속에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게 시험이며 근소한 차이로도 명암이 교차하는 것이다. 따라서 젖 먹는 힘까지 다해서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도 그 결과를 당연시하거나 그 영광을 자신만의 능력으로 단정한다면 이 또한 무지하리라 보인다.


이렇듯 바쁘고도 숨가프기만 한 삶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평화로움이란 삶의 자그마한 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농사의 경우에도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추수를 끝낸 후 잠시 평화로움을 느끼겠지만 머지않아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사일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의 경우도 입시나 고시를 힘들게 통과해 성공에 이른다고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새로운 경쟁의 시작에 불과하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이들은 그때부터 자기 정도는 되는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전보다는 더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박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는 경우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前代未聞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숨 막히는 자신과의 싸움이 펼쳐진다.


하던 일에서 손을 놓을 때까지 삶 자체는 보이지 않는 시험의 연속이다. 십 대 이십 대 때에는 시험이란 게 형식과 범위가 있고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도 주어지지만 그 이후에는 형식이나 범위라고는 없는 밀림 속 살벌한 생존경쟁의 시험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YB가 OB가 되면서부터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껏 아래는 거들떠보지 않은 채 위만 바라보니 여유라고는 없고 자신의 모습도 잘난 구석이라고는 없이 초라하게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아래까지 내려다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감춰진 잘난 점까지 보이는 재미난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고 진정 추구할 수 있는 평화로움이란 농사나 시험과는 다른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진정한 평화로움은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富와도 별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돈은 사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라면 진정 평화로울 자격이 있다. 권력도 명예도 마찬가지이다. 환갑이 되어 이러한 삶의 원리를 접하게 되니 그전까지 살아온 삶이 무척 경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창공을 넘어 우주로 (61)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평화란 과연 어떤 걸까?'를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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