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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삶은 과연 다른 걸까?

by 최봉기

세상에서 암만 많은 부와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때부터 삶은 캄캄한 터널이 아닐 수 없다. 고3 때 반창 약 60명 가운데 10여 년 전 현재 세상을 떠난 걸로 알려진 이는 5명 정도인데 이제는 이들 외에도 더 많은 사망자가 있을지 모른다. 이들은 교통사고를 비롯해 간경화, 혈액암, 췌장암과 같은 질병으로 세상과 작별하게 되었다. 대학교수로 일하다 췌장암으로 몇 년 전 환갑도 채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한 친구는 건강검진 때 별 이상이 없었지만 몇 달 후 이상증세가 느껴져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망한 이들 가운데에는 어려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학창 시절 때 공부와 멀어져 대학진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매일 술로 시간을 보내다 간경화로 마흔전에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이렇듯 같은 반에서 모두 입시라는 고지를 향해 숨 가쁘게 지내며 대학에 진학해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중에는 아쉽게도 일찍 눈을 감은 이들 외에는 현재 은퇴 후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인생으로 환산한다면 06시에 기상해서 자정에 잠자리에 든다고 가정할 때 평균수명 여든에서 마흔까지 산 이들은 산술적으로 오후 세 시경, 예순까지 산 이들은 저녁 7시 30분경 잠자리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환갑을 맞이했던 나의 경우는 현재 4시간 정도 후, 구순까지 산다면 6시간 정도 후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지금까지 여러 제약 속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하건만 우선 건강과 함께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 또한 있어야 하기에 그 정도가 되기도 무척 어려운 현실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수명이란 건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다. 자신이 길게 혹은 짧게 입맛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하루하루 똑같이 주어지는 게 시간이지만 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하루란 시간을 놓고도 어떤 이유에서든 같은 시간에 일어나 초저녁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게으른 이와 자정까지 일을 하고 잠드는 근면한 이의 삶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면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낼 뿐 아니라 그런 생활을 최대한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천수를 누렸다고 해서 환갑까지만 살다 삶을 마감한 이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일찍 떠나는 자가 있고 오래 사는 자가 있지만 대개 평균 연령이라 할 83.5세 (2023년 기준 남자 80.6, 여자 86.4)가 되면 모든 걸 놔두고 저 세상으로 간다. 좀 빨리 눈을 감은 이들 가운데 청춘을 술로 보내며 염세적으로 세상을 등지고 산 이들이 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고로 일찍 삶을 끝내는 이들도 있다. 아직 살아서 노후를 보내는 이들 가운데에도 인생 '제2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60대에 노후의 낭만을 찾을 정도가 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20대까지는 삶이란 걸 잘 모르기에 이로 인해 온갖 시행착오와 정신적 고충을 겪는다. 그 후 직장을 가지고 다소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자녀교육과 가족부양에 힘을 소진하다 보면 20대 때 잠시 느껴본 자유와 낭만을 시기적으로는 환갑이 되어야 다시 찾을 수 있건만 이때 왕성한 건강과 경제적인 여유 속에서 여생을 즐기는 일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남은 자라고 해도 일찍 떠난 자보다 별반 나을 게 없다. 다시 말해 너나 할 것 없이 늘 부족하고 아쉽기만 한 게 인생이다. 남은 자는 어찌 보면 일찍 떠난 자의 유족들이 부러워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는 이들의 부족분을 메워줘야 하건만 실제로는 일찍 떠난 이를 오히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일찍 떠나는 자와 오래 머무는 자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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