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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산행의 추억

by 최봉기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생애 처음으로 설악산을 갔다. 그땐 비선대, 울산바위, 비룡폭포 등 외설악 코스였는데 높은 봉우리와 계곡의 경치가 무척 대단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가서는 계곡이나 주변만 보고 오다가 드디어 2013년 10월 처음으로 대청봉까지 등반하게 되었다. 산악회 버스로 서울에서 22시에 떠나 오색약수터에 도착, 입장시간까지 잠시 기다린 후 03시부터 걸어 올라가 약 5km 거리를 06시가 좀 지나 대청봉에 도착했는데 공룡능선을 타보려 했지만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이른 시간에 희운각 대피소를 통과해야 하건만 아침 식사를 하느라 시간을 못 맞춰 공룡 대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왔다. 비선대를 지나 설악동까지 약 7km. 폭포가 계속 이어지던 천불동 계곡도 그 비경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과연 공룡능선은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후 2016년 9월 공룡능선 산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오후 시간에 오색약수터에 도착했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다. 탐방 안내소 직원이 우의나 옷 여벌은 있는지 묻길래 대소롭지 않게 생각하고 강행군을 했는데 갈수록 비는 그치지 않고 비닐 우비도 없이 빗속 산행에 옷이 젖고 체온도 떨어질 뿐 아니라 등산화도 젖어 물이 흥건했다.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등산화를 말렸다. 나 뒤에 대피소에 들어온 등산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신발이 젖어 등산화와 양말을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청대피소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저녁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비는 멈추고 날씨는 맑아졌다.


중청 대피소를 나와 희운각 대피소까지 이동하여 공룡능선 산행을 시작하였다. 신선대, 범봉을 지나 1275봉, 나한봉으로 가는 길은 골이 무척 깊고 험했다.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였고 군데군데 설치된 밧줄의 도움으로 가파른 지형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공룡능선'이란 이름은 모양이 공룡의 등뼈처럼 생겨 그리 지은 것이며 내설악과 외설악을 두루 전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도중에 봉정암에서 숙박한 등산객들이 단체사진을 부탁하기도 했다. 총 5km 정도를 걸어서 마등령 3거리에 도착했다. 이제는 내리막길이라 한시름 놓았다. 거기서 비선대까지 3.5km를 내려와 더없이 맑은 계곡에 발을 담갔다.


2019년 10월 코스를 바꿔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까지 8.3km 거리를 갔다가 중청대피소에서 하루 자고는 공룡능선을 타고 오세암,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까지 약 10km를 내려왔다. 서북능선은 공룡이나 천불동의 경치에 비할 정도는 못 되었다.


지금까지 설악산은 공룡능선과 천불동 계곡을 각 두 차례씩 다녀 봤는데 산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음을 느낀다. 지리산이 곰이 기거할 정도로 웅장한 산이라면 설악은 오밀조밀 아름다운 산인 것 같다. 특히 단풍이 물들 때 봉우리와 계곡이 어우러진 경치는 대한민국의 어느 산도 견주기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도심에서 매연과 소음 속에 짓눌리다 맑은 공기와 계곡의 물을 대하노라면 나 자신이 잃고 사는 내면의 고요함과 때 묻지 않은 맑고 올곧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뾰족한 봉우리 사이를 제치고 저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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