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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산행의 추억

by 최봉기

제주도라고 하면 국내의 여타 섬에 비해 육지에서 한참 더 떨어진 섬이다. 1984년 난생처음으로 사진으로만 보던 제주도를 부산에서 페리호를 타고 가게 되었다. 당시 LA올림픽이 시작되던 때였는데 태풍 소식도 있어 일기가 좋지 못했다. 바다는 그나마 잔잔하여 걱정하던 배 멀미는 하지 않았다. 밤새 불빛이라고는 없는 망망대해를 헤치고 배가 육지에 가까워지자 흙냄새와 함께 지겹던 항해는 끝이 났다.


제주항에서 출발, 성산 일출봉으로 가서 하루 묵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한라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때 마침 비가 내리며 입산은 금지되었다. 등산객들이 올라가지는 못하고 입구 매점에서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표지판 안내문에 한라산은 일 년에 절반은 비로 인해 입산 금지된다고 되어 있었다. 따라서 다음에 큰맘 먹고 또 오더라도 산행은 못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 시간이 흘러 제주도에 가 둘레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지만 한라산 산행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차에 2016년 몇몇 친구들과 한라산 등반 겸 제주여행을 가게 되었다. 3월이라 아직 눈도 녹지 않았던 산길이라 아이젠을 등산화에 부착하고 올라갔다. 관음사에서 오르는 길은 막혀 있어 산굼부리 옆 성판악에서 올라갔는데 9.6km 거리를 5시간 동안 걸어 백록담에 도착했다. 기온이 낮아 몸속에 핫팩을 넣고 걸었지만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까지 올랐다는 성취감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산들과 달리 정상에서는 저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2019년 1월에 한번 더 한라산 산행을 했다. 한겨울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제대로 서 있기가 버거울 정도로 강하고도 거세었는데 정상에서 잠시만 내려오자 바람의 매서움이 훨씬 덜했다.


2018.11월에는 가족과 영실로 올라갔다. 영실코스는 백록담 아래까지만 볼 수 있고 윗세오름까지 산행거리도 5.8km로 짧아 왕복 5~6 시간이 소요되었다. 바다와 기암으로 경치도 좋고 계단으로 된 구간이 많아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코스였다.


제주도란 섬은 예로부터 일본이나 몽고 등 외부로부터 수차례 침입을 당했기에 생활하는 여건 자체가 육지와는 크게 달랐다. 사람이 사는 흔적을 감추기 위해 굴뚝을 두지 않고 아궁이로부터의 연기가 곧장 부엌이나 방으로 들어가게 하여 실내의 습기를 말리게 하였고 비와 바람이 많아 초가지붕도 육지보다 더욱 견고하였다. 또한 위태로울 때에는 꼭 필요한 생활 도구만 집어 들고 도주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조선시대 때에는 유배지이기도 하였다. 1947년 3.1일 기점으로 1948년 4.3일 소요사태, 1954년까지 무력충돌이 이어진 제주 4.3 때 수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하는 등 한이 맺힌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뇌와 신음소리가 진동하는 제주도와 그 중심에 위치한 한라산은 단순히 며칠 쉬러 갔다 오는 곳이라 말하기엔 그 여운이 채워지지 않는 곳이라 해야 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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