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국내에서 다녀본 산을 헤아려 보니 2002년 산림청이 선정 공표한 100대 명산 중 절반 이상은 되는 듯하다.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 (1,947m), 지리산 (1,916m), 설악산 (1,708m)을 비롯 북한산, 도봉산, 오대산, 두타산, 치악산,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대둔산, 계룡산, 무등산, 민둥산, 내장산, 월출산, 가지산 등. 지리산을 비롯 덕유산과 대둔산은 과거 빨치산들이 모여서 살던 지역이라 한다.
2013년 9월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여 있다는 지리산을 혼자서 2박 4일간 종주하였다. 그전엔 구례의 피아골이나 하동 쌍계사, 함양의 칠선계곡 등 지리산 줄기를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종주를 해본 적은 없기에 종주 경험자들에게 교통, 대피소 등을 물어보았고 등반 코스, 체력, 준비물 등에도 신경을 썼다.
드디어 배낭을 꾸려 용산역에서 여수행 밤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려 버스로 이동, 성삼제에 도착 후 어둠을 뚫고 노고단까지 걸어가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새벽 6시. 그때부터 종주가 시작되었다. 워낙 깊은 산이라 그런지 '곰 발견 시 주의사항'도 보이고 서울 근교의 산들과는 사뭇 다른 자연환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거대한 산이라 웅장함이 남달랐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다. 중간중간 전국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산행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해남 초등 동기란 팀은 전날 도착, 노고단 대피소에서 지금은 금지된 양주도 마시며 1박을 했고 그중 한 사람은 지리산을 수 없이 다녔다고 했다. 반야봉,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형제봉을 지나 세석대피소로 갔다. 첫날 총 20km 정도를 약 10시간 걸었다. 반야봉과 토끼봉은 '이현상 평전'이란 책에 의하면 빨치산과 토벌대가 과거에 전투를 벌였던 곳이었다. 이현상이란 빨치산 우두머리는 빨치산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는데 지리산에서 숨진 걸로 알려진다.
세석대피소에 오후 4시 30분경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제 산중에서 잠만 자면 되기에 마음을 풀고 참치캔에 김치를 넣어 찌개를 만들었는데 옆에서 삼겹살을 구워 술을 마시던 사람 둘이 함께 먹자고 제안을 하여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깊은 산중에서 술과 고기로 세상 부럽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음날엔 이동, 오후에 3.4km 걸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고 거기서 1.7km 걸어 천왕봉까지 갔다 다시 내려와 장터목에서 맞이했던 일몰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1년에 그런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저녁을 먹었고 다음날 부스럭부스럭 렌턴과 스틱을 꺼내 천왕봉 일출을 보러 나섰다. 새벽이라 쌀쌀한 날씨에 민족의 정기가 스며있는 명산의 기운을 마음껏 느껴 보았다. 그리고는 며칠간 산속의 생활을 정리하고 함양의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하산길은 무척 가파랐는데 큰 배낭을 짊어지고 힘들게 오르는 사람과 달리 며칠간 지내며 빈 깡통과 쓰레기로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투벅투벅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고 그전부터 학수고대했던 지리산 등반이었기에 성취감으로 뿌듯하기만 했다.
며칠간 약 25km 등산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연일 걷는 일이야 각오했지만 열악한 화장실과 양치나 세면을 하는 일이었다. 하산하여 한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목욕을 하고 그동안 대충 한 끼씩 때우던 끼니와 달리 그나마 제대로 된 식사를 하니 이제야 등산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 났다.
인생은 어쩌면 끝없는 등산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목표한 일을 정해진 시간에 끝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등산이 인생과 비교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마음먹고 등산을 갔던 사람들 중에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등산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이 처음 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 후 땀이 나고 몸도 풀려 한참 동안 힘든지 모르고 정상을 향해 걷고 또 걸으며 최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인증숏을 찍고 가벼운 걸음으로 하산한다.
우리의 삶도 이렇듯 초심으로 잡념 없이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다면 무척 편안하고 만족스러울 듯한데 삶이란 행로는 잘 닦이고 검증된 등산로가 아닌 중간중간 암초도 있고 낭떠리지도 있는 아직 아무도 가본 적 없는 행로란 점에서 차이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