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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0. 2022

변해 가는 세상

인간이 육십을 살면 장수했다고 잔치를 벌이던 시절이 있었고 태어나 백일을 넘기기만 해도 잔치를 했다. 지금은 육십은 건너뛰고 칠십이나 팔십에 축하 잔치를 하는 걸로 바뀌었다. 지금 시각으론 환갑이나 백일잔치가 마치 아프리카 부족에서나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거기엔 아직 온갖 질병들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의료기술, 주거환경 등에서 그들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나라들은 우리가 못 살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연장자들에 대한 대우나 예우는 현재의 우리보다 나을지 모른다. 또한 사회가 발전하고 선진화된다고 해도 개개인의 행복지수까지 그리 되는 건 아니다. 몸은 편하고 생활수준은 다소 향상됐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그때만 못할 수도 있다.


며칠 전 나의 부친은 구순, 부모님은 혼인 육십 회인 회혼년을 맞이해 잔치를 했다. 부친은 평소에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해오신 데다 조부들께서도 오래 사셨던 유전적 영향도 있어 장수하고 계신 것 같다. 아무튼 세상은 바뀌어 간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한마디로 '고령화'라고 하는데 거기에 '저출산'까지 겹쳐 은퇴 후 거리를 떠돌며 방황하는 노인들의 수가 과거 학교 주변에서 힘차게 뛰어놀던 어린애들 숫자를 방불케 하며 씁쓸한 느낌을 준다. 갈수록 사회가 늙어가고 노인 관련 문제는 사회경제적 시스템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보인다. 과거에는 노인들이 어린애들을 상대로 옛날이야기도 해주었고 천자문도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노인과 어린애들은 대개 따로국밥이고 애들도 용돈 주는 노인은 몰라도 가난한 노인은 잘 따르지 않는 야박한 세상이 되었다. 노인이 애들에게 도움 되는 얘길 해주려 하면 주위에서 잔소리 친다는 말도 한다.현재 젊거나 어린 사람들은 지네들은 평생 어리거나 젊게 사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학교 주변은 초등학생 코 묻은 돈을 벌어드리는 가게나 노점상들이 줄을 이었다. 문방구, 떡볶이집, 만화방, 솜사탕, 또 뽑기, 똥과자, 번데기 등. 초등학생 숫자가 한 반에 약 60명씩 10 반씩, 전교생이 3,600명씩 매일 등하교를 했고 이들은 군것질, 어린이 잡지와 미술 실습교재 구입 등 탄탄한 구매력을 가진 좋은 고객 집단이었다. 특히 운동회, 졸업식, 입학식, 소풍, 수학여행 등은 대목으로 각종 필요 물품들의 매출이 몇 배씩 증가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초등학교 주변에는 태권도, 유도, 쿵후, 공수도, 야와라 도장도 많았는데 당시 부모들은 애들이 맞고 다니길 싫어했기에 빡빡했던 생활에도 월 생활비의 일정 부분을 이러한 것에 기꺼이 투자하였다. 또한 여자애들은 방과 후 피아노 교습소와 미술학원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애들 덕분에 먹고살았던 학교 주변 가게들도 요즈음은 "아 옛날이 그래도 좋았네."라는 넋두리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성인이 되면 군대도 가서 나라도 지키고 취업을 하면 산업 역군이 되어 경제 발전에 기여하며 고도성장도 이끌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결혼을 해도 자녀를 갖지 않는 세대가 늘어나 학교 주변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각종 격투기 도장도 사라지고  방과 후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애들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 시절엔 은퇴 후 그다지 오래 살지 않고도 생을 마감하다 보니 노인 부양 기간도 지금보단 훨씬 짧았다. 정년 후 10년 노후가 20~30년씩 길어질 경우 노인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힘들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인 자신들은 건강을 잘 유지하여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도 사회적 여건도 함께 바뀔 필요가 있다. 웃긴 말로 "늙으면 죽어야지", "인제 노망드셨네"와 같은 망언은 사라질 필요가 있다.


말이 노인이지 그들이 과거 종사했던 부문별 경험과 연륜은 현역이나 손자 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구닥다리'라고 홀대한다면 현재 현역들도 좀 있으면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바뀌려면 노인들 자신들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내가 중학교 시절 한 노땅 선생은 정년퇴임 전 물상 수업을 하면서 자신도 잘 모르는 걸 칠판에 적기만 하고서 시간 때우는 수업을 하다 우리가 졸업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돌이켜보니 본인은 본인대로 배우는 우리는 우리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 중고등 학교 때 사설학원을 다닐 때 나이 먹은 선생들이 있었는데 은퇴 전 영어나 수학을 가르쳤던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 밥값은 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사설학원에서는 실력이 없는 강사에게는 수강생들이 모이지 않기에 그러하다.


현재 팔십 나이에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김종인 (1940년생) 바이든 (1942년생)이 그러하다. 대한민국 사회도 은퇴자들의 과거 경력과 삶의 연륜이 생산적인 방식으로 바뀌며 무시당하지 않고 존경받을 수 있게 될 필요가 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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