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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1. 2022

겉치레를 벗고 내실로

꽤 친한 친구 하나는 겉치레를 무척 좋아한다. 환갑을 앞둔 내가 삼 삽대 초반이었을 때 그 친구는 스키장을 한번 갔다 오더니 스키장을 자주 가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스키 탔던 얘기를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어 대더니 최근에는 자기 자식과 함께 골프 친 걸 자랑하였다. 내가 한때 지리산 종주를 하며 장터목 산장에서 봤던 일몰 경치가 지더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는 알프스산에서 더 멋진 모습도 봤다고 과시를 했다. 이렇듯 남 앞에서 뽐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기에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까불지만 만만치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겸손하다.


은행에 돈을 맡기러 오는 VIP급 고객들 중 현금 재산이 남보다 조금 많은 사람들은 입는 옷이나 타는 승용차를 고급으로 치장하여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면 남들보다 훨씬 많은 현금을 가진 사람들은 요란 떨지 않고 마치 누가 보면  별로 돈이 없는 사람처럼 수수한 복장을 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돈 많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잘못하면 집에 도둑이 들거나 길에서 강도를 당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스스로 속이 차있으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족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과거에 몇 년 있었던 미국 동남부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는 '조선옥'이란 한국식당이 있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떠벌이며 "애틀랜타에서 나만큼 현금 가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하며 날뛰었는데 그다음 날 바로 집에 도둑이 들었다.


내실과 외화를 겸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외화를 우선하는 사람들은 대개 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전쟁이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라고 떠벌였는데 막상 전쟁이 터지자 반대로 점심은 대전에서 저녁은 대구에서 먹는 처지가 되었다. 적의 동태나 전력과 대비한 아군의 전력이나 대응책은 없이 말로만  떠벌이다가 적이 쳐들어오자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계속 밀리며 대통령에게 국군이 선전하고 있다고 허위 보고를 했고 결국 대통령이 국민들을 버리고 먼저 수도를 도망치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도 개성, 신의주 하며 떠벌이니까 전쟁 발발 시 처음에는 남에서 북침 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지만 창피하기 짝이 없다.


남 앞에서 위세 부리는 걸 '외화'라고 하는 반면 속으로 알찬 것을 '내실'이라고 한다. 나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서 구두쇠 소리를 들으며 70년을 남한에서 돈 걱정 없이  살아오신 부친의 영향을 받아 외화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편이다. 속으로 차 있으면 어지간한 어려움이 닥쳐도 크게 흔들 일 일이 없는 법이다. 지나친 겉치레나 허풍은 머지않아 그 정체가 드러나고 내실 앞에서 무릎을 꿇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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