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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4. 2022

견리사의 vs 견의사리

'견리사의'란 말은 공자가 한 말로 이로운 걸 보면 의로운 걸 생각하란 말이다. 과거부터 의로움을 좇았던 사람들에겐 좌우명과도 같은 말이자 실천규범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갈수록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고 또한 물질적인 가치가 정신적인 가치보다 우선시 되며 인제는 어찌 보면 꼰대들의 말처럼 책에서나 보거나 혹은 박물관에나 보관되게 되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곧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엔 눈앞에 권력이 보여서인지 '견리사의' 대신 의로운 걸 보며 자기한테 유리한 걸 생각하는 '견의 사리'가 판을 치고 있다.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갈 때엔 나라를 팔아먹거나 일본에 빌붙어 자신의 이득을 손에 넣으려 했던 무리들도 많이 양산되었지만 정반대로  무모하리만치 별 실익도 없어 보이던 독립운동을 하며 온갖 불이익과 고초를 감수했던 사람들도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사실 조선의 해방은 독립운동의 결과라기보단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자기 손에 넣으려 하다 패망하여 얻어진 것이었다. 처음에 일본에 저항하던 지식인들도 일본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자 더 이상의 저항은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일본에 협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 후 1919년 3.1 운동이 있었지만 1920년 이후 변절자가 가장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뜻있는 일부의 선각자들은 국내를 떠나 연해주, 만주 등에서 좌익, 우익으로 색깔은 달랐어도 독립운동을 전개해왔다. 숫자로 보면 좌익 운동가가 더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좌익이 박헌영, 이현상, 김원봉, 김일성 등이었다. 좌익은 당시 일본이 자본주의였기에 그 반대인 공산주의로 저항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현상 같은 인물은 일제 때부터 동맹휴학과 파업 등 노동운동을 해왔으며 지리산 빨치산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는 좌익, 우익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의로움을 추구하며 저항을 해왔던 것인데 해방 이후엔 일본인은 철수하고 대신 한반도에 남쪽, 북쪽으로 미군과 소련이 주둔하자 그전의 의로움이 이로움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벌어진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득이 존재하고 이를 포기할 마음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현재까지 분단이 되어 있고 남과 북의 이념 관련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러시아나 중국마저 실용주의를 중시하며 이념의 그늘을 탈피, 햇볕을 보려 하지만 남북한은 계속 나사가 겉돌고 있다. 이토록 이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특히 북한의 경우는 그리해야 자기 손에 먹을게 들어오기 때문이며 이 또한 일종의 견의사리의 심리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익이 보임에도 이를 걷어차고 의로움을 찾아 형극의 길을 갔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일본의 보호하에서 일본 천황을 떠받들고 일본말을 하고 일본인처럼 행세하며 꽃길을 갔던 사람들 두 부류가 인제는 그 빛깔조차 분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지만 '견리사의'와 '견의사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영속적인 발전이나 국민의 제대로 된 삶보다 떡고물만 손에 넣으려 제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정치꾼들은 지금이라도 광기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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