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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4. 2022

죽은 삶 vs  살아 있는 삶

인간은 태어나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며 하루하루 의욕을 가지고 살게 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살아 있다고 할지언정 별 의욕도 없고 개성도 없이 죽은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삶을 산다면 생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의 경우 의식 없이 오랫동안 숨만 쉬고 누워 있었는데 혹자는 상속 등 문제로 사망선고만 되지 않도록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생이란 것은 육체적으로 숨을 쉬고 있기보다 자신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뭔가 의미 있는 사고와 행동을 할 때에서야 비로소 죽은 삶이 아닌 살아 있는 삶이 되는 것 같다.


말을 바꿔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살아있을 때 자신이 왕성하게 살면서 뜻있고 유익한 유산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불후의 문학작품을, 그림이나 조각 아니면 음악이나 발명품 등. 이 경우엔 비록 죽은 사람들이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고인이 된 많은 사람들 중에서 뇌리에 남아 있는 인물들이 여럿 떠오른다. 전기와 전화를 발명한 에디슨과 벨,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 좋은 시를 남긴 여러 시인들, 좋은 소설을 남긴 소설가들, 나라를 빛낸 운동선수들, 멋진 곡들을 작곡하고 노래한 작곡가들과 가수들, 멋진 영화에서 멋진 연기를 했던 명배우들. 각 부문별로 감사의 마음과 감동적인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생이란 것이 꼭 화려한 뭔가를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의로운 것을 위해 자기 한 몸을 던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삶은 현실적이고 살기에만 급급했던 사람들과는 다른 살아 있는 모습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듯 의로운 사람들의 삶은 사회적 지위나 소유한 재산과 무관하게 이 캄캄한 세상을 진정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드는 등불이라 생각된다.


현재 젊은이들은 성장과 발전의 기회가 크게 줄었고 강도 높은 경쟁 속에서 스스로 주체해 나가기가 무척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세상의 가치관이란 것 자체가 우리가 어렸거나 젊었을 때보단 물질화 혹은 금전화되어 버렸다. 우리 땐 그래도 어른의 권위란 게 있었는데 지금은 인생의 경험을 가진 어른한테 조언을 듣는 것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삶의 가치를 죽은 삶과 살아 있는 삶으로 나눠서 스케치해 보았다. 이는 삶 자체의 의미 혹은 가치로 보아 살아있는 모습 아니면 겉으로는 살아 있어도 속으로는 죽은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의인들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지금 세상에도 안중근, 윤봉길과 같은 의인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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