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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6. 2022

행복의 나라

한대수란 가수가 1974년부터 부른 노래 중에 '행복의 나라'라는 곡이 있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문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 주게

봄과 새들의 노래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줘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위의 곡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자 동기 하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걸 들으며 조숙함과 세련됨 그리고 동경심까지 물씬 느꼈던 노래였다. 그 여자 동기는 오빠나 언니가 당시 대학생이어서 기타도 배우며 나보단 20대들의 분위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당시 독재정권하에서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억압된 자유와 개성을 마음껏 표현했던 노래인데 금지곡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행복의 나라가 북한이 아니냐는 이유였고 둘째, 지금은 행복하지 않느냐는 이유였다. 무슨 얘기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금 그 노래 가사를 대하면 무척이나 소박하며 자연친화적이다. '바람'과 '풀밭'과 '새들'은  벤츠나 BMW를 타는 사람들이 즐기는 향유 물이 아니다. 슬리퍼나 운동화를 신고 반바지를 입고 걸어 나가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이나 그때나 행복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고 늘 손과 발이 닿는 곳에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세분화된 과목별 지식을 습득했고 매주 시험을 치렀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하여 또한 삶의 목적에 대하여 배우거나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다. 특히 고등학교 때엔 S대 가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 나머지는 들러리라는 식의 이분화된 체제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걸 보고 '획일화'라고 한다.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데 자신은 늘 주어진 틀속에 맞춰지고 그러한 틀에 잘 맞지 않을 경우 불량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나는 20대 때 현실과 이상 속에서 심한 방황을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찌 보면 방황할 힘이 소진되어 버렸다. 방황도 체력이 필요하다. 그 시절 지인 중 한 명이 자기 큰형 얘길 들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두뇌가 좋은 사람이었고 시험을 쳐서 경북고에 그것도 탁월한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고1 때부터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 철학자의 철학서적을 탐독하였다고 하며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매우 순수하였다고 한다. 학교 성적이 계속 떨어져서 부모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의뢰하기까지 했는데 전문의 얘기가 한마디로 천재라고 했다고 한다. 졸업 후 농대를 진학하였는데 한참 지나서 누가 한의학 공부를 권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자신이 심취할 수 있었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입시철 신문에 어느 학교 교장이 자신이 경험했던 한 수재의 진로 관련한 경험을 올려놓았다. 자신이 지도했던 한 학생은 늘 수석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최고 우등생이 가는 S대 법학과를 진학하였다. 하지만 생각이 늘 깊고 철학적이었다는데 법대 공부가 맞지 않아 계속 방황하다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그 교장은 그 학생이 만일 철학을 공부했더라면 현대판 이황이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주로 문과에서 공부 잘하면 법대와 상대, 이과에서 공부 잘하면 의대라는 등식이 있지만 의대 입학자 중에서도 적성이 맞지 않아 전과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대학 전공과 직업도 삶 속에서의 행복과 직결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경우 발전도 없겠지만 생존조차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우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전공과 직업을 택하는 게 정답이다. 흔히들 맞춰가면서 산다는 얘길 하기도 한다. 부부도 천생연분이 어디 있냐고 하며 성격의 차이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나름 의미는 있다. 하지만 너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경우라면 이혼외엔 답이 없다.


여러 가지를 골고루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 스포츠, 공부 등에서 경쟁력을 모두 갖춘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고 할 때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인생은 여러 번이 아니고 한 번이기에 그러하다. 또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에서처럼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낼 수 있으면 행복하게 되는 것이지 엄청난 부와 지위나 명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처갓집이나 시댁의 도움으로 얻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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