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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7. 2022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우리가 3학년 때였나 5학년 때였나? 국어 교과서에 아이들과 어른이 나무 아래에서 대화하던 내용이 나온다. 내용인즉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가 하는 대화였다. 어떤 아이는 수소폭탄이라고도 대답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정답은 잊어버리는 것, 즉 '망각'이었다. 그 후 가끔씩 그 내용을 떠올려보곤 하였는데 초등학생에게 왜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배우게 했을까? 지금도 궁금한데 얼핏 스치는 생각은 사고력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였을 듯싶다.


'잊어버리는 것'이 있고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전자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후자는 물건을 어디 다른 곳에 버리고 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은 다시 돈을 주고 더 멋진 걸로라도 사면된다. 하지만 잊어버리는 것은 다시 원상태로 회복이 되지 못하므로 별거 아닌 듯하여도 어떤 경우에는 무서운 의미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과 기억에서 지우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쉽게 또한 적절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토록 기억하려 해도 기억을 못 해 시험문제를 틀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불쾌한 기억은 머리에서 지우려 해도 계속 남아 불쑥불쑥 떠오르며 사람을 괴롭힌다.


인간이나 국가에는 과거에 발생하여 인제는 지나가버린 일들이 있는데 이중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귀가 따갑게 듣고 배웠던 것들이 1919년 삼일운동, 1945년 광복절, 1950년 6.25 사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등이다.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일들은 노래로도 부르곤 하였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던 대한독립만세..", "우리 어찌 잊으랴.."개인의 생각이나 중요한 집안의 내력 등은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말로만 해버릴 경우 잊혀 버리거나 와전이나 왜곡될 수도 있고 또한 특정인들이 별세할 경우 그냥 잊혀 버리기도 한다. 나의 경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척 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제삿날 집에 오시면 어린 우리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고조부, 증조부의 존함을 늘 한자로 종이에 쓰시면서 가족의 내력을 알려 주셨다. 난 아직 고조부까지는 존함을 한자로 기억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등학교 때 국사를 가르치셨던 은사께서는 늘 조상을 받들고 부모님을 존경하는 예절을 가르치셨는데 부모님 존함을 묻는데 "김 뭐입니다"라고 하는 건 순 쌍것들 짓이라 하시며 "김자 *자 *자입니자"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지금 가만 보니 친척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내가 자녀들에게는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는데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에 나온 영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에 점점 조선어가 사라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스스로 한글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어학회 직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였다. 영화 중간 우리말이 거의 잊혀 가던 1940년경에 어떤 조선인이 서울역 앞에서 어린애랑 부딪쳤는데 애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 "죄송합니다" 대신 "스미마셍"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조선은 거의 일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처음엔 허드렛일이나 하며 돈이나 벌자고 조선어학회에 들어간 판수(유혜진 분) 였지만 글을 읽고 쓰기를 공부하면서  말은 곧 정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며 일본 군대나 경찰과 싸우는 사람들의 정신도 대단한 것이지만 잊혀가는 조선어가 사어가 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지키려 노력했던 이들의 노력도 그 못지않게 위대했던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잃어버린 것은 돈을 주고 새로 사면 되지만 잊어버린 것은 영원히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라 수소폭탄보다 무서운 것이 망각이라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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