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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7. 2022

축복과 저주

세상에는 축복받는 일도 있고 그 반대의 일도 있다. 늘 축복이 쏟아지는 삶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나온 노래가 '장밋빛 인생'이다. 그때 부르는 노래가 '사랑의 찬가'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되리란 보장은 없다. 장밋빛이 어찌 잘못되면 저주의 빛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한때 천사와 같던 상대가 악마로 바뀔 수도 있다.


천사가 악마처럼 바뀔 경우 마음속엔 계속 저주의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되면 괴로운 건 자기 자신이다. 모르긴 해도 상대방의 마음속에는 이미 나란 존재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데 나 혼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신이 너무 불쌍해질 수 있다. 최근에 와서 한번 역발상을 해 본다. 미운 사람은 욕을 하고 미워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서 자신을 한번 더 괴롭힌다. 따라서 일부러 감싸버리려 한다면 저절로 마음속에서 얼어붙은 눈이 녹듯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성서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힐링 차원에서 음미해 본다면 미워할수록 자신이 계속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미운 사람이라도 한번 사랑해보라는 의미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아마도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라도 놓으면 마음이 무척 평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지만 저주 대신 축복해줄 수 있을 때 정신적 치유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 같다.


 '남영동 1984'란 영화가 있다. 고인이 된 주인공 김근태는 그 영화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그 영화 맨 마지막에는 고문을 당한 경험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거기서 설훈은 전두환이 그렇게 싫었지만 미운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크나큰 고통이어서 결국은 용서해주게 되었다고 하였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차라리 용서해 버리는 게 홀가분하고 정신건강에도 이로울 수 있다.


축복은 천국, 저주는 지옥처럼 보이지만 그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한때 사랑했던 상대가 어찌하다 원수도 되는 것이지 원수가 되려 따로 태어난 사람은 없는 법이다. 한때 박정희의 충복이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미국에 망명을 가서 온갖 박정희 욕을 하다 실종되었고 또 한 명은 주군을 총으로 쏘아 죽게 하였다. 이들은 한때 박정희의 보호 속에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축복과 저주, 저주와 축복이란 상반된 두 가지가 얽혀 있는 곳이 삶이다. 인간들 간에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반대로 틀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축복스런 상대는 많이 또한 오래 관계가 이어지게 하되 저주스러운 상대는 되도록 적게 또한 차라리 무관심한 상대로 바꿔보려 한다면 삶의 질도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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