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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8. 2022

홈런 한방을 기다리며

우리가 10대나 20, 30대 때 대한민국은 현재보다 생활수준이 낮고 사회나 정치 분위기도 권위적, 고압적이었지만 간혹 일반인들의 생활 속 불만이나 정치적 울분을 잠재워버리는 파격적인 조치들이 나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들 몇 가지를 떠올려 본다. 첫째, 군내 위계를 망가뜨린 12.12, 시위 진압이라기보단 학살에 가까운 5.18을 통해 체육관에서 눈속임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민심을 돌리기 위해 나온  '과외금지 조치'. 둘째, 1987년 전두환의 호헌 선언 때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며 저항하자 자구지책으로 나왔던 게 '6.29'. 셋째, 1993년 YS가 대통령이 되며 군내 사조직을 해체시켰던 '하나회 정리'가 그것들이다. 이런 조치들은 답답해하던 국민들에게 막힌 수도관이 뚫리는 듯한 후련함을 주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는 끌려가는 야구경기에서 극적으로 터지는 홈런 한방과도 같은 통쾌함을 느끼게 했다.


우선 전두환의 '과외금지 조치'이다. 80년 초 광주 학살로 권력을 잡았던 전두환은 사회개혁을 부르짖으며  "성실한 사람만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어찌 된 놈의 사회가 성실한 사람들은 못살고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잘 살고 있었던가? 누군가는 그런 식의 구호는 절대 나와선 안 된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1980년 7월 과외를 금지시키며 대학입시도 본고사 대신 학력고사로 바꿨고 내신을 반영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엄청난 지탄을 받았고 언론을 제맘대로 주물렀던 독재자였지만 과외금지는 사실 많은 국민들 그중에서도 특히 중하류 계층으로부터는 큰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월급쟁이들은 사교육비의 부담이 적어져 일단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교복자율화로 인한 의류비 지출 증가 등과 함께 위축되던 소비가 일부 살아나기도 하였다.


과외 금지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 다름 아닌 학원가의 단과반 강사들과 대학의 가정교사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몰래바이트'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한때 넓은 강의실에 학생을 앉혀놓고 영어와 수학 등 본고사 전략과목을 가르치며 수강생들을 웃기고 울리던 유명강사들은 과외가 해제될 때까지 한마디로 긴 터널에 갇히게 되었다. 1989년 2월 대학생 과외가 전면 허용되었고 2000년 4월 말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가 위헌이란 판결을 내리면서 과외 규제가 해제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경남 학원의 현광식은 과외금지 기간에 당구장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던 강사들은 도시 빈민으로 추락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학 입학 후 경남 학원 앞 생맥주집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다 우연히 과거에 영어를 가르치던 한 강사를 봤는데 생활고가 심한지 몇몇 사람들 사이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두환은 집권하자마자 7년 단임, 평화적 정권교체란 말을 귀가 따갑게 하더니 정권 말기가 되자 말을 바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2개월 이상 호헌철폐를 외쳤다. 당시 군에 준전시 (진돗개 2?) 비상이 발령되며 트럭에 총탄까지 실었다는데 역 쿠데타설도 있어 전두환과 군출신 정치인들은 자구지책으로 6.29를 발표하며 시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되었더라면 서울시내가 5.18 광주로 바뀌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5 공초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 때 박정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말 한마디 할 때도 무척 조심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 잘못했다가 큰 시위가 일어나면 서울 시내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하였다. 5공 때 천주교 사제들 일부는 벙어리처럼 가만있는 김수환의 추기경 해임 탄원서를 로마 교황청에 수시로 보내기도 하였다.


YS는 대통령이 된 후 금융실명제 실시와 함께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정리에 들어갔다. 12.12 당시에는 청와대를 지킬  임무를 띤 부대가 반란군에 가담하였다. 당시 한미연합사에서 한국군의 대응을 지켜보던 미군 지휘부는 만일 북에서 쳐 내려온다고 가정한다면 한국군이 어찌 대응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모자에 별만 달고 있었지 다들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북한군이 쳐내려 와서 총살이라도 시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12.12 때 대령이던 김진영이란 인간은 내가 군 복무할 당시 참모총장이었는데 하나회 멤버란 이유로 바로 전역조치를 당했다. 그 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며 전두환 포함 12.12 가담자들이 재판에 출두하기 위해 재판장 로비에서 걸어가던 모습이 TV 화면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당시 김진영은 과거 자신의 상관이며 반란군과 대치했던 장태환 전 수방사 사령관이 "상관을 보고 인사도 없어"라고 호통을 치자 모른 채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국가를 지키는 군대에 비선조직이 있었고 이들이 뭉쳐 허위보고를 하며 윗선의 지휘계통을 따돌리고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은 암암리에 알고 있었지만 말도 못 하고 끙끙댈 때 당시 대통령 YS는 과감히 이들을 군에서 쫓아내 버렸다. 이를 봤던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상 과거 불만과 울분을 잠재웠던 3가지 정치적 조치를 스케치해 보았다. 세상이 갑갑하고 하늘이 잔뜩 먹구름으로 덮여 태양이 보이지 않을 때엔 화끈한 뭔가가 그리워진다. 야구시합에서 끌려가는 경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것은 홈런 한방이라고 한다. 현재 갑갑한 현실에서 누구나 화끈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홈런 한방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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