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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8. 2022

깨달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가기 전 길바닥에서 가장 먼저 인생을 배우게 된다. 몇 이서 구슬 치기나 공기놀이를 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혼자 외롭게 있기보단 어울리는 게 재미도 있고 시간도 잘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한 번씩 말다툼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틀어져 혼자 있다 보면 적적하기도 하여 타협 차원에서 화해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도 길바닥에서 나름 배우게 된다. 제도화된 학교의 교육은 이런 것까지 가르쳐 주진 않는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어린애들의 영향력과 이해관계 및 갈등을 마치 정치인들의 권력을 둘러싼 도전과 방어처럼 신랄하게 보여준다. 5학년인 '한병태'는 서울에서 시골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서 그 반의 무서운 권력자 엄석대란 존재를 만난다. 처음엔 그의 영향력에 저항하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그의 수하가 되는데 늘 1등이던 엄석대의 성적이 자기 실력이 아닌 조작에 의한 것임이 새로 부임한 담임에 의해 밝혀지고 황제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석대는 새 담임한테 몽둥이로 얻어 맞고 바닥에 쓰러진다. 또한 반의 친구들은 돌아가며 지금까지 석대가 저지른 비리를 낱낱이 까발리며 "저 세끼 나쁜 놈이에요"라고 하고 석대의 우상의 이미지는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한다. 결국 석대는 교실을 불 지르고 도망가게 되는데 시간이 흘러 병태가 어디서 본듯한 누군가가 기차에서 도망가다 급하게 그를 쫓는 형사에 의해 붙잡히며 손에 수갑이 차이는 것을 보며 20여 년 전 시골 초등학교의 같은 반 반장 석대임을 떠올리는 내용의 소설이다.


공식화되고 제도화된 것들, 즉 학교에서 칠판에 백묵으로 써가며 학습하는 교육이 교육이고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 정치라는 인식은 겉장만 넘겨도 무척 순진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에겐 필요가 있는 곳에는 발명이나 그에 준하는 뭔가가 나오듯이 공식적인 교육기관인 학교가 아닌 길거리에서도 비공식적인 배움 관련 행위가  이루어지며 국회 등 공식적인 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영향력 행사와 타협 등 준정치 활동이 늘 이루어진다. 어찌 보면 이러한 제도화되지 않은 일들은 사소해 보이고 힘이 약할 것 같지만 자발적인 필요성이 뒷받침되므로 그 힘과 지속성이 오히려 더 강할 수도 있다.


그 외에 종교와 관련해서 교회나 절 등 공식적인 종교 단체가 있고 개신교나 천주교의 경우 주일날 예배나 미사를 통해 공식적인 종교활동이 이루어지지만  절, 교회를 나가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성서나 불경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신앙은 제도적이라지만 기복적인 것들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부친을 통해 시간강사에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전 교수까지의 진급 과정을 전해 듣고 "전 교수는 실력이 제일 좋겠네요?"라고 물었더니 부친은 웃으면서 "어떤 경우는 전임이나 조교수가 훨씬 실력이 나은 경우도 있다"라고 하셨다. 대학의 석사나 박사 학위의 경우에도 나름 공식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과거 공식화된 학위과정이 없던 시절에 학사만 가지고도 박사 이상의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이 있었다. 고인이 된 이기백 (1924~2004) 교수는 한국사의 최고 권위자로서 학사학위 하나만으로 수만 명(?)의 박사를 능가할 정도의 실력과 학문적인 권위를 인정받았고 그의 명저 '한국사신론'은 1967년에 출간된 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어 읽히며 연구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문열이란 작가도 대학 중퇴자인데 소설가로서 그의 실력은 문학박사 수만 명(?)을 능가할 정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이문열과 그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특히 외국인에게 비판적인 걸로 유명했던 '르몽드지'가 "대한민국에 저런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라는 극찬을 하기도 하였다. 80년 봄 민주화의 바람이 하루아침에 신군부에 의해 짓밟히며 군사독제가 재현될 당시 프랑스 언론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는 악평을 하였다.


이상 비 제도화된 것들을 예로 들며 그 속에 감춰 있는 의미를 경험과 사고를 통해 스케치해 보았다. 나는 이번 글의 제목을 '깨달음'이라고 지어보았다. 그 이유가 나는 지금까지 공식화, 제도화된 것들에서 삶의 해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찌 보면 오래 동안 각종 제도의 희생물이었던 건 아닌지 혹은 그것들에 세뇌되어 온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제도란 것은 대개 전체로 볼 때 평균 정도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심안이나 혜안을 가지고 보면 제도의 맹점들이 하나씩 둘씩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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