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봉기 Mar 18. 2022

삶과 색깔

인생이 무슨 색깔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 같다. 현재의 삶의 만족도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이 잘 되는 경우엔 밝은 색, 정 반대의 경우엔 어두운 색일지 모른다. 한 때 탄광지역 어린이들에게 물의 색깔을 물었더니 검은색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물을 검게 칠했다. 전쟁을 겪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빨간색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피 흘리며 죽은 시체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나는 회색이라고 답할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애와도 같은 흰색과 어둡고 속이 시커먼 검정을 반씩 섞어 놓은 게 회색인데 그것이 지금 나에겐 인생의 색깔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가서 3학년 때였나? 담임선생이 말 안 듣는 애들에게 뺨을 때리는 걸 처음 보았고 여선생 한 사람은 여자애 얼굴을 회초리로 갈기는 걸보고 당시엔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다. 흰색의 마음이 시뻘겋게, 아니면 시퍼렇게 변하는 것이었다. 그 후 중학교 때 교실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깡패 같던 한 녀석이 키가 큰 친구에게 한대 얻어맞더니 볼펜을 집어 들어 키 큰 친구 머리를 내려 찍었고 볼펜 심이 머리 아래 목에 박히자 박힌 친구가 공포감에 벌벌 떨며 양호실로 부축받으며 끌려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시뻘건 악마의 나라에 잠시 들른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인생을 희게 바라보는 순수한 사람 또는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순박한 사람은 세상에서 상처를 받기가 무척 쉽다. 온갖 종류의 사람이 모여 살며 이해관계가 애매하게 얽히게 될 경우 인간 본연의 마음이 왜곡되거나 변질되기 십상이다. 처음 했던 말이 갑자기 달라지고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경우에는 언제 그랬냐고 딱 잡아떼기도 한다.


대도시는 각 거주지별  선호도에 차이가 있다. 한때는 대학가가 각광받을 때가 있었지만 매일 데모와 체류탄이 난무하며 주거지로서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제일 비인간적인 곳이 법원 주변이라고 한다. 재판을 하러 모이는 사람들은 온갖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양심과 도덕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이 법이란 강제 규범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법원 주변에는 늘 살기가 돌고 재판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속으로 들어가면 강원도 탄광지역보다 훨씬 시커멓고 더러운 곳이 법원 주변이다.


남녀관계에서도 이성을 사랑할 때 누군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행복해지면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인다고 하여 나온 노래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Le vie en rose)'이다. 하지만 꽃이 시들듯이 남녀 간의 사랑도 영원할 수 없다. 자신의 배우자를 색깔로 표현할 때 애인과 같은 배우자는 '주황', 그냥 마누라는 '빨강', 동생 같은 경우 '노랑', 친구 같은 경우 '초록', 섹시할 경우 '보라'라고 한다. 아마도 빨강, 노랑, 초록은 몰라도 주황이나 보라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 거라고 생각된다. 누가 묻길래 나는 노랑이라 답하였다. 같이 오래 살다 보면 남자나 여자 둘 다 중성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박하사탕'이란 영화에서는 '영호'란  남성이 흰색의 순수한 청년에서 세상의 굴곡을 겪으며 온갖 더러운 때가 묻은 시커먼 40대의 남성으로 전락하며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지며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나 다시 돌아 갈래".


사업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잘 풀리고 기대한 일들에서 성과가 나올 때 하늘을 보면 구름이 걷히고 무지개가 자신을 축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고인이 된 김영삼 대통령이 오랜 야당 정치인으로 고생하다 1993년 대통령이 되며 군부 독재 시절의 비리 관련자를 구속시키며 지지도가 급상승할 땐  세상에 부러울게 하나 없었고 매일 무지개가 그를 감쌌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자식의 이권개입과 경제상황이 악화되며 레임덕이 올 때엔 하늘에 무지개 대신 까만 구름이 가득 찼다.


팔레트의 물감은 갖가지 종류의 색깔로 구성된다. 색깔을 섞을 경우 다른 새로운 색깔이 나오기도 한다. 색깔이 섞이면 섞일수록 밝아지지 않고 어둡게 변한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본래의 맑고 곱던 색깔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탁하게 바뀌기가 쉽다. 살다 보면 "세상에 믿을 놈 없다",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식의 생각이 몸에 베인다.


암만 세상이 얼룩지고 마음이 혼탁해져도 본연의 순수한 색깔을 회복하려 해 보고 맑은 가을 하늘과도 같은 투명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변색된 곳을 색칠해 본다면 삶의 빛깔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가져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깨달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