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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20. 2022

3김의 회고

얼마 전 노태우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박정희, 전두환과 더불어 군출신 대통령이었지만 12.12, 5.18과 관련되며 세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임기 후부터 문민정부가 출범하며 민주화란 말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3 Kim이란 사람은 그 이전부터 한국 정치사에서 때로는 경쟁자로 때로는 협력자로 지내왔다. 나이는 DJ가 1924년생, JP가 1926년생, YS가 1927년생이었다. (참고로 박정희는 1917년생 육영수는 1925년생이었다.)


이들과 친분이 있었던 김동길 교수 그리고 이들을 취재했던 조갑제 (전월간조선 편집위원)가 경험했던 3김에 관한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를 해본다. 3김 중 최고 연장자인 DJ는 명문을 졸업하진 않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고 한다. 글솜씨도 아주 뛰어났고 논리적인 면에선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 대선에 출마했던 1971년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혜안과 언변에 매료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었다.


김동길이 DJ와 알게 된 것은 과거 연세대학교 교수 시절 정보부에서 총장에게 데모 주동자를 퇴학시키라는 연락이 왔는데 김 교수는 총장에게 퇴학시키면 절대 안 되고 만일 그럴 경우 자기가 사직하겠다고 했는데 그 내용이 신문기사로 나왔고 그 기사를 본 당시 야당 의원 DJ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만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DJ는 당시 "잘하신 일입니다"라고 말해 주었고 서로는 공감을 나누었다.


DJ는 10.26 이후 내란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는데 그전에 일본을 오가며 거국적인 반유신 운동을 할 때 조총련의 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꽤 컸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2000년 북한을 방문할 때 김정일에게 수천억 원을 갖다 준 것도 과거에 빚진 걸 갚은 거란 말도 있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뭐라 잘라서 말할 순 없다. 하지만 DJ는 역대 대통령 중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YS의 경우 셋 중 나이가 가장 어린데 어릴 적부터 집이 부유하여 돈 욕심은 적었고 명예를 중시하는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야심이 강해 대학 때 당시 정치인이던 장택상의 옆집에 일부러 방을 구해 자치생활을 하면서 아침마다 담 넘어 그 집에 물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러자 하루는 식사를 하던 장택상이 물 붓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옆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며 주인을 불러 왜 남의 집에 물을 붓느냐고 했고 주인은 옆방의 학생을 불렀다.

장 :  우리 집에 물을 부었는가?

YS :  예, 제가 그랬습니다. 어떻게든 뵈려 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아 이렇게라도 하게 됐습니다.

장 : 그럼 나를 왜 보려고 했는가?

YS : 저는 정치를 꼭 해보려 하는데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장 : 자넨 지금 신분이 뭔가?

YS : S대 철학과 4학년입니다.

장: 그럼 내 보좌관으로 일을 해보게.

그 후부터  YS는 장택상의 후광을 입어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고 내리 9선을 하게 되었다.


YS는 DJ에 비해 언변, 논리적 사고나 식견이 떨어졌다. 따라서 만일 둘이서 정책 토론을 했다면 DJ가 가뿐하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YS는 DJ가 가지지 못한 '강단'과 확신이 설 경우 물러섬 없이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었다.

YS의 치적이라 말하는  '금융실명제의 전격 실시'와 '하나회 정리'는 YS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말을 한다. 그는 대통령 시절 즐겨하던 말이 "씰 데없는 소리"였다.


YS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초대되어 갔는데 로비에서 전두환이 오는 걸 보고 "전두환이는 왜 불렀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만찬 때 전두환이 와인을 하나 더 달라고 하자 또 큰 소리로 "청와대에 술 무로 왔나?"라고 하자 전두환은 머쓱하게 일어서서 슬슬 빠져나갔다고 한다.


김동길의 말에 따르면 YS는 공부를 싫어하여 한량에 가까웠다고 한다. 대통령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려면 스스로 공부가 필요한데 그러한 점에서는 스스로 한계를 노출하였다. 임기말에 한 번은 자신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했는데 YS는 자신에게 "김 교수 나는 나라 돈 해먹은 거 없어요"라고 했다. 김동길은 그 말을 듣고 "자식이 해먹은 건 해먹은 것 아닌 가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 참았다고 했다.


다음은 김종필이다. JP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였고 박정희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면서 대권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결국 이인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5.16 쿠데타를 주도면밀하게 기획, 주도하다 시 피하였고 그 후 국정의 굵직한 일을 무리 없이 해결했던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모르긴 해도 JP가 없었다면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어려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정희 특유의 용인술의 희생자 이기도 하였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육사 8기로 동기였던 김형욱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동원되어 서로 충성경쟁을 벌이는 통에 찬밥을 먹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JP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보스 기질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JP는 낭만적이었고 정치 외에 그림도 잘 그렸고 역사, 예술, 영화 등에 대한 식견도 풍부하였으며 군출 신중에서는 언변도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상 3김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봤다. 군부 독재 시절 DJ와 YS는 탄압의 대상이었고 갖은 고생도 하였다. 그리곤 결국 대통령이 되어 나름 치적도 있었지만 자식들의 이권개입 때문에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이들에 대해 얘길 한다면 흉을 볼 일도 무척 많지만 기왕이면 잘한 일들을 기억하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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