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시간, 나를 '살리는' 시간

새벽을 달려 나를 세우다

by 달이 아빠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갖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새벽에,

나는 나를 만나기로 했다.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은 채

이대로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 또 무너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 미룰 수 없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달리기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몇 번 시도했다가

기록에 집착하는 마음이 싫어 그만두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고,

몸이 조금이라도 버텨줘야

마음과 감정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기록 목표는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단 10분이라도 괜찮으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일단 나가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달리는 내내 나는 아빠도, 남편도, 직장인도 아닌,

그저 숨이 차오르는 한 사람이 되었다.

시간만큼은 누군가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러다 문득 미뤄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기도 했다.

괜찮은 척 넘겼던 피로, 말로 꺼내지 못했던 서운함 같은 것들.


달리기가 그 감정들을

단번에 치유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도망치지 않고

담담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그때 꽤 힘들었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잘 버텼다’

하며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게 되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늘 두 가지 감정이 남았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나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


그리고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왔다는

잔잔한 후련함.


매일 아침 이 두 감정과 함께 내 다음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두 감정은 매일 조금씩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성취감은 일상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하루를 끌려가기보다는

내가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일상에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일이 크든 작든

새벽 달리기도 했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당히 먼저 자리했다


후련함은 나를 무너지기 전에 살피는 힘이 되었다.


지치고 힘든 날의 감정을

애써 넘기지 않고,

그 감정들이 한계에 닿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를 통해

나를 잃지 않고 나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무너지기 전에 나를 살피고,

다시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나를 살리는 시간이 되었다.


달리기를 이어온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1년 365일 중 340일쯤은 달렸던 것 같다.

3년을 거의 매일 달렸다고 하면 마라톤 정도는 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루에 달리는 거리는 3에서 5킬로미터 남짓이다.


다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한 번 나 자신을 지나왔다는

성취감과 후련함만 가져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아직도 놀랍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싱글 시절에도 못했는데,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금

시간을 내어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그만큼 나를 살피는 시간이 간절했나 보다.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날에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한다.

새벽 6시 반쯤 헬스장에 가면 늘 마주치는 얼굴이 둘 있다.

알고 보니 둘 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이었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서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루를 조금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이곳에 나와 있다는 것을.

더 좋은 가장이 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챙기고 있다는 것을.


곤히 잠든 아내와 아이를 두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아침을 여는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조용히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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