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해먹인다는 것

식탁을 채우다 차오른 마음

by 달이 아빠

달리기를 이어가던 어느 날,
숨을 고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로 단단해진 마음을

가족들과도 나눠겠다고.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고,

매일 반복할 수 있으며,

가족의 하루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일.


가족들의 밥을 챙기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생기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매일의 식사였다.


둘이 있을 때야 외식을 하거나

배달로도 충분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식사는 달랐다.

식당에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챙기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신경 쓰느라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배달 음식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


결국 끼니를 해결하는 건 피할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집 식사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맡아줄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내가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주말에는 괜찮았지만

평일에 퇴근하고 매번 요리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업무가 늦어지는 날도 많았고,

제때 집에 와도 재빠르게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재료를 사두고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홀로 아들 둘을 키우며

일을 하시면서도

매 끼니를 허투루 넘기지 않으셨다.


늘 다른 반찬이 식탁에 올랐다.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10분 만에 상이 차려졌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결은 늘 미리 준비해 두는 데 있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이나 하루를 마친 저녁에

늘 다음 끼니를 준비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기 전 들리던 도마 소리,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도

다시 부엌에 서 계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 나도 해보자.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해내던 방식 그대로.


그렇게 나는 주중 끼니를 앞당겨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월요일과 화요일 음식을 준비하고,

화요일 저녁에는

수요일과 목요일을 준비했다.

주중에 하루쯤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으며 숨을 돌렸다.


우리 집의 매 끼니를 책임지다 보니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음식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미역국, 소고기 뭇국, 두부조림, 삼겹살 카레, 김치콩나물국, 짜장, 볶음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특별할 것 없는 메뉴들이었지만

우리 집 하루를 채워주는 음식들이 되었다.


밥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역할이 하나 늘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루의 끝에 남는 감정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끼니를 챙기며

나도 모르는 사이 보람을 배우고 있었다.


학생 때 시험을 잘 봤을 때나

직장에서 성과를 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나는 늘 보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들은 보람이라기보다는

순간의 성취감에 가까웠다.


가족의 한 끼를 책임지는 일,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손에 쥐어본 진짜 보람이었다.


아들이 나를 ‘우리 집 요리사’라고 부를 때,

아내가 몸이 좋지 않다며 내가 만든 김치콩나물국을 찾을 때면

이전에는 없던 또 하나의 내가

조용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새로운 나를 느낄 때마다,

나는 그를 제법 오래 바라보게 된다.


휴대폰에서 단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밥을 해 먹인다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어머니가 수십 년간

말없이 채워오신 식탁이

얼마나 큰 감사였는지를.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나를 안쪽부터 채워주는지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얼마를 벌든,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묵직한 확신이

나를 내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준다는 것을.


아버지를 보내던 화장터에서

모든 절차가 끝난 뒤,

화부가 우리 가족에게

위로하듯 건넸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사는 거 별거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하고

맛있는 거 먹는 거,

그게 다입니다.”


그 말을 마음속에 품고,

오늘도 묵묵히

사랑을 얹어

한 끼를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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