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Wife, Happy Life
내게 행복은 오랫동안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나의 십 대는 아버지가 가신 후
밀려든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던 시기였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는 티를 내지 않으려
또래와는 다른 치열함으로 무장해야 했고,
그 비장함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오늘의 행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유일한 등불 삼아,
'내일'을 위해 '오늘'을 통째로 저당 잡힌 채 살았다.
그 치열함은 20대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되어,
어깨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를 만났다.
아내와의 만남은 내 안의 외롭고 어지럽던 세계를
단숨에 정돈해 버린 사건이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던 어두운 방 안에
누군가 들어와 조용히 창문을 닫고
불을 밝혀준 것 같았다.
나는 늘 오지 않은 미래에만
발 담그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아내는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와 함께 있으면,
내 삶을 옥죄던 저당권이 비로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가신 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하고도 든든한 충만함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작아지던 나와 달리,
아내는 그들 틈에서 더욱 환하게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주변을 밝히는
아내의 온기가 좋았다.
늘 어둡고 침침했던 내 세계에 처음으로 떠오른 달 같은 사람.
나는 그 은은한 온기 안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고 싶었다.
아내는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나를 현재에 머물게 했다.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나 역시 행복해도 된다고
온몸으로 믿게 해 주었다.
아내는 그렇게 조금씩
혼자만의 치열함과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던 나를
구원해 주었다.
그런 아내와 결혼을 선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람과 있어야 내가 오늘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나를,
사람 하나만 보고
선택한 그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내 마음의 중심은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작고 소중한 그 생명에게
내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쏠렸다.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문제는 육아와 회사 생활을 병행하며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발생했다.
한계에 다다르자, 예전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날 선 언쟁들이 우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런 다툼은 아이 앞에서도 몇 차례 반복되었다.
아이 앞에서만은 절대로 다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찰나의 감정에 그 결심은 매번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루는 아이와 내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조차 다툼이 벌어졌다.
나중에 친구가 말하길,
우리가 언성을 높이는 동안,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며
잔뜩 불안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러고는
부모님이 다투실 때면
죄인이라도 된 양 숨을 죽여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우리 아들도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이면 어쩌나.
아니겠지
나는 밥도 해주고, 씻겨주고,
매일 같이 놀아주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치밀어 오르는 불안을 애써 눌러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식인 나에게만큼은 온 마음을 다하셨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머니와는 때로 부딪치고 갈등했을지언정, 아버지는 나에게 대체로 늘 좋은 아빠였다.
당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건네던 그 투박한 사랑을,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토록 든든한 아버지를 곁에 두고도
부모님의 다툼이 그토록 아팠던 이유는,
어머니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온 우주였던 어머니의 슬픔이
마치 내 것인 양 아릿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내게 주었던 사랑과는 별개로,
속수무책으로 깊어지는 어머니의 슬픔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의 눈으로
고스란히 담아내야 했던 기억은 여전히 시리기만 하다.
그렇다.
어머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었고 우리 가정의 행복이었다.
반대로 어머니의 불행은
그대로 나의 불행이었으며, 우리 집의 불행이었다.
어머니라는 우주가 흔들리면,
그 안에 살던 어린 나의 세계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기억을 반추하다 보니 문득 우리 아이의 모습과 겹쳐진다.
아이는 아내와 내가 다투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격양된 목소리로 무조건 엄마 편을 들곤 했다.
그건 아빠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우주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는 본능적인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아이에게 물으면
아빠는 그냥 조금 사랑한다고 하지만
엄마는 '바다의 파도가 하늘에 닿을 만큼' 사랑한다고 한다.
표현의 차이에서 사랑의 차이가 드러난다.
나는 그게 내심 서운했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되짚어보니 이해된다.
아빠에 대한 마음은
엄마를 향한 마음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열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몸으로 숨 쉬며
서로의 심장 소리를 나누었던 그 절대적인 유대를,
뒤늦게 합류한 아빠가
온전히 이해하기엔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아빠가 된 나로 생각해 보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만큼
아버지에게는 미처 닿지 못했던 마음이 못내 아프게 다가온다.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쏟아부었음에도,
늘 2순위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쓸쓸한 어깨가 이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그 쓸쓸함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얼마 전 아이와 단 둘이 차를 타고 오던 중,
늘 장난기 가득한 5살 아이가 갑자기 진지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내가 왜 아빠를 엄청 많이 사랑하는 줄 알아?"
나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그의 태도와,
나를 엄청 많이 사랑한다는 표현에 조금은 당황하며,'왜'라고 묻는다.
"그건 아빠가 나하고 엄마를 지켜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나는 5살 아이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본다.
그의 말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방법이
모두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은
아이의 전부인 아내를 더 많이 아껴주는 것이란 것을.
얼마 전 회사에서 연수 중,
같이 참여한 동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한 한국계 독일인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남았다.
평생 독일에서 살던 그가 한국인 아내를 만나
향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그가 독일에서 이룬 모든 성취를 뒤로하고
낯선 한국 땅으로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며 짧게 덧붙였다.
‘Happy wife, happy life.’
아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그 명료한 문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이정표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머물고 있다
좋은 아빠란,
결국 좋은 남편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마음으로 이해한다.
며칠 전 아들과 단둘이 차를 타고 오던 중
전에 아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이에게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본다.
"아빠는 항상 우리 아들한테 고마워"
아이는 '왜'라고 묻는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는 엄마가
우리 아들 덕분에 너무 행복해 보여서 "
아이는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씩' 웃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