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로 한 이유
나는 남들보다 일찍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열네 살의 어느 날,
아버지가 아무런 예고 없이
생(生)의 바깥으로 멀어졌다.
그 나이대 모든 아이에게 그렇듯,
당시 나에게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세상을 지탱하던 두 축이었다.
그 두 축 중 하나가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나갔으니,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14살 소년이
마주하기엔 너무 일찍 찾아온 종말이었다.
오지 말았어야 할 그 붕괴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무너져가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남겨진 단 하나의 축마저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매일같이 숨죽이며 불안해해야 했다.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차가운 낙인이
이마에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세상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삶의 여진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그 여진들로 인해 무너져 내린 자리마다
잿빛 먼지가 자욱했고,
그 갑갑함이 평생 내 앞을 가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주 오랜만에
화장을 하시고
장도 봐 오셨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일상처럼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셨다.
훗날 어머니는 그날을 '마음을 다잡은 날'이라고 기억하셨다.
오직 당신만 바라보는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매일의 고단한 생을 치열하게 버텨내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달파하기보다
매일 한 발짝씩 나아가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졌다.
그저 순간순간
떠오르는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꿈꾸던 것들을
하나둘 이루게 되었을 때,
문득 아버지가 떠오르면
그저
“이 모습을 보시면 좋아하시겠지.”
하는 생각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산 덕분에
이제는 아버지의 부재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자부심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실감하며,
뜸했던 아버지 생각이 다시금 밀려든다.
가끔은 꿈속에서 마주하기도 한다.
나는 잠시 멈춰 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하나둘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존재였길래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그리움이 다시금 묵직하게 찾아오는 것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살면서 간간이 떠오르던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둘 찬찬히 이어 붙여 본다.
그 흩어진 조각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선명해지는 것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단단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공무원이셨다.
늘 정갈한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는데,
그것은 본인의 꼿꼿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가장 편해야 할 가족들 앞에서도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바로 병원을 찾으실 정도로
본인 몸을 귀하게 여기셨다.
어린 마음에는 좀 유난스러워 보였는데
가장이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가 그토록 스스로를 아꼈던 건,
당신이 무너지면 남겨질 가족들이 겪어야 할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내기 위한
그 나름의 치열한 방식이었음을.
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두 아들을 향한 애정만큼은
그 무뚝뚝함 너머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사회인으로서 여러 사정이 있었을 텐데
주중의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꼭 시간을 내어
아들들과 함께 보내려고 하셨다.
퇴근 전에는 전화로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으셨고,
집에 돌아오면 마당에서
함께 뛰어놀아 주셨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데려가
두 아들을 정성스레 씻겨주셨다.
그때 아버지가 우리에게 쏟았던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이를 키우는 나의 일상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
가끔 일이 늦어져 아들이 잠든 뒤에야 귀가하는 날이면,
나는 아내에게 "아이의 깨어 있는 모습을 못 보는 날은 하루를 헛산 것 같다"라고 하소연하곤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머니는
아버지도 생전에 똑같은 말을 했다고 들려주셨다.
그 시절 아버지 역시 아들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드는 날엔 하루의 의미를 찾지 못하셨노라고.
'아 아버지도 그랬구나.'
수십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내가 같은 마음으로 하루의 끝을 아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잔잔한 위로가 되어
나를 다독여주는 듯했다.
그 위로를 따라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자,
내가 아버지를 어떤 존재로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지,
그 인식을 결정지었던 오래 전의 장면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가끔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그 안에는 당신이 걸어온 어린 시절의 발자취와,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을 향한 다정한 격려가 섞여 있었다.
세세한 문장들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화 끝에 남은 감정만큼은 또렷하다.
소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고,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차올랐다.
내 마음 안쪽부터 단단하게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비로소 마주한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그립다는 것을
만약 아버지가 곁에 계셨다면,
가장이 된 내게 어떤 말을 해주셨을까.
내가 태어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를 키우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면,
내가 아빠가 되는 과정이 조금은 덜 막막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나를 찾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유난히 오래 고민하게 된 이유도
지난 인생의 변곡점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마주한 고민과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된 감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아버지와의 기억을 문장으로 남겨두려 한다.
아버지가 나를 아무런 준비도 시키지 못한 채 떠나버린 것처럼,
혹여 나 또한 그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로 다 전하지 못할 마음을 이곳에 미리 심어둔다.
언젠가 이 글들이 아들의 손에 닿을 때,
내 아이는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어른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 기록은,
이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아버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아버지가 곁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것만 같다.
서툴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이 기록들이,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아들을 잇는 영원한 대화가 되기를 꿈꾼다.
그런 마음을 담아 한 줄씩 써 내려간다.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속도로,
‘아빠’라는 이름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안쪽부터 고요하게 차오르는 이 자신감이 나를 든든하게 붙들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