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지키며 느끼는 소중함과 불안함에 대하여
'소중'하다는 말이 있다.
단순히 '귀하다'는 뜻을 넘어,
잃고 싶지 않고, 쉽게 대할 수 없으며,
마음을 다해 아끼는 상태를 뜻한다.
이 '소중'하다는 말은 고정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시절 인연에 따라 천천히 자리를 옮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도 소중함은
몇 차례 머물 곳을 바꾸며 흘러왔다.
십 대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 무게가 온전히 실려 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은 아득한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 자리는 아내를 지나,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그렇게 시절에 따라 몇 차례 자리를 바꿨지만,
지금의 그 자리를 아이가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소년 시절의 나와 청년 시절의 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미래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건 막연한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평소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내가
내 아이에게도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아이가 아내의 몸 안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무심한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함께 자라났다.
그러나 아이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나의 그 길었던 고민들은 민망할 정도로 무색해지고 말았다.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마음 한쪽에 있던 불안은 온데간데없이 녹아내렸고,
그 자리는 처음 느껴보는 뜨거움으로 채워졌다.
아이의 낯설지 않은 얼굴과 찰나의 몸짓에서 문득문득 내 흔적이 스칠 때면,
말로는 다 못 할 끈끈한 유대감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랐다.
나는 그런 내 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 지켜주고 싶었다.
첫걸음마부터 놀이터의 미끄럼틀까지,
아이의 몸에 아주 작은 상처라도 날세라,
나는 1미터 안의 안전벨트가 되어
아이의 동선을 쉼 없이 뒤쫓았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어둠이 짙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섭리였을까.
아이를 향한 애착이 강해질수록,
그 뒷면에는 정체 모를 불안의 그림자가 조용히 길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내 삶의 부피를 채워가는 만큼,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한기가 문득문득 마음의 가장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하루는 이 불안이 아이가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꿈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놀란 가슴으로 잠에서 깬 나는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해야 했다.
비슷한 밤들이 되풀이되자, 나는 이 기묘한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은 이토록 넘치고 아이는 여느 다른 아이보다 건강한데,
나는 왜 일어나지 않은 슬픔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그 끝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예고된 이별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무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쓰러지셨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하루아침에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경험은 내 안 깊은 곳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소중한 존재가 언제든 예고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서늘한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어머니가 집 밖으로 나설 때마다 증폭되곤 했다.
어머니는 그저 잠시 외출을 한 것뿐이었지만,
집에 남겨진 우리 형제는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을까 늘 문 밖을 서성이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당시 겨우 열네 살이었던 나는
그래도 큰 아들이라는 책임감을 방패 삼아
타들어 가던 속내를 서둘러 감췄다.
내 안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벌써부터 감정의 문을 잠그는 법을 배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세 살이나 어린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를 마주한 동생의 눈은 젖어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동생을 달래주는 대신
되려 크게 야단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어머니가 비정하다고도 느꼈지만,
지금 부모가 되어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홀로 두 아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당시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마음껏 안아줄 수 없는 아픔인 동시에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생의 가혹한 짐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10대와 20대가 남들보다 유독 치열했던 이유는,
어쩌면 내 안의 그 불안을 지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0대 20대를 살며 간신히 지웠다고 생각한 불안이
아이를 품에 안으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중한 존재가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어린 시절의 그 해묵은 두려움이 지금의 불안 위로 겹겹이 포개지자,
비로소 이 마음의 실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지키려 했던 나의 과도한 시선은
실은 아이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열네 살의 그늘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 안의 겁먹은 소년을 다시는 울리지 않으려는 지독한 몸부림이었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아이의 안전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의 실체가 보이자 이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이를 내 안의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놓아주는 일이었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켜내야 할 대상은
내 안의 겁먹은 소년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준비하는
바로 이 아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꽉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펴는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대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스스로 새로운 길을 그려나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인내를 배운다.
과거의 상처가 반복될까 두려워 ,
아이를 내 안에 가두는 것을 멈추고,
지금 내 눈앞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기 시작한 아이를 오롯이 바라보는 것.
나보다 더 눈부신 삶을 스스로 그려나가도록 온전히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 안의 소년을 놓아주고,
내 앞의 아이를 한 명의 독립된 존재로 마주하는
진짜 사랑의 시작임을 깨닫는다.
바로 그것이
시절을 돌아 흘러온 내 '소중함'의 무게가
지금 왜 이 아이의 위에 머물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