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기적을 껴안다.

둘째가 나타났다.

by 달이 아빠

​"여보!"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집안 공기를 낯설게 흔들었다.


평소와 다른 그 파동에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내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는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가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이 집안을 감쌌다.

그 작은 플라스틱 막대 하나가

평온했던 우리 집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고 있었다.


둘째가 나타난 것이다.


첫째가 태어난 이후,

우리 부부는 둘째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하나만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게 맞을지,

부족하더라도 둘이 의지하며 자라게 하는 게 맞을지.


그 질문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그렇게 고민만 하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결국 우리는

터울이 너무 커진 것 같다는 이유로,

‘하나만 잘 키우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한동안 나는

그 결정을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믿었다.


어느덧 다섯 살이 된 아이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밤이 되면 비교적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일상이 찾아왔다.


나는 그제야 숨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평온함에 젖어들 무렵,

둘째가 찾아온 것이다.


그 조그마한 여유의 틈새를 비집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과정을 지나야 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기쁨보다 먼저 떠오른 건 당혹감이었다.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다시 그 시간을 지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 한켠이 쉽게 환해지지 않았다.


혹시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정말 왔구나.

“다시 시작이구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그러다 주위의 축하를 받으며,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 이건

축하받아야 할 일이구나.'


그제야 우리는

첫날의 당혹스러움을 조금씩 비워내고,

둘째라는 존재를 우리 집의 새로운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나니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조금은 홀가분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테스트기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선명한 두 줄은 그 짙은 색만큼이나

나를 똑바로 보고 묻고 있었다.


아빠로, 어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가 되었느냐고.


그 물음에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며,

마음속에 단단한 매듭 하나를 묶었다.


그 매듭을 꼭 쥔 채,

둘째를 기다렸다.


같은 ‘기다림’이었지만,

첫째 때와는 결이 사뭇 달랐다.


그때의 막연한 두려움 대신,

둘째를 기다리는 마음엔 작은 확신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어떤 순간들이 오고,

어떤 파도들이 지나가는지

이미 그 길을 온몸으로 통과해 본 덕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덜 두려워하고,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둘째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작은 몸으로 세상을 버티고 있는 아이와

이미 다섯 해를 살아낸 아이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온다.


동시에 지금의 시간 위로

첫째 아이 때의 기억들이 포개어지곤 한다.


그 기억들 속에 허둥대는 내가 보인다.


무언가를 놓칠까 봐 조급했고,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에

하루하루를 버텨내듯 지나온 시간들이 스쳐간다.


돌이켜보니 아이를 키우는 데 온 신경을 쏟았지만,

정작 그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분명 함께 있었던 시간인데도

중간중간 필름이 끊긴 것처럼

파편화된 기억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내 앞에는

다시 아주 작은 아이가 누워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못해도 괜찮고,

조금 더 느려도 괜찮으니,

이 아이와의 시간을

빠짐없이 마음에 담고 싶다.


밤새 이어지는 울음도

빨리 지나가야 할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아이가 살아내고 있는 순간이라는 걸

놓치지 않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얼굴과,

그 곁을 다정하게 지켜주는 첫째의 얼굴까지.

이번에는 모두 느끼며 지나가고 싶다.


여섯 살 아이의 등을 토닥이다가

한 달 된 아이를 안고 있으면,

나는 또 하나를 조용히 알아간다.


아빠가 된다는 건

더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둘째가 나타났다는 건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르게 살아볼 기회를 얻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덜 허둥대며,

조금 더 천천히 지나가 보려 한다.


아이의 시간 곁에서,

그 시간을 놓치지 않는 아빠로.

내게 다시 한번 찾아온 이 기적을

온전히 껴안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청해서 밤을 맡는다.


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숨이 편안해질 때까지, 작은 등을 천천히 토닥인다.


한번 해봤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다.

이 시간이 돌이켜보면

금방 지나가 버릴 순간이라는 것을.


아이를 안고 집안을 서성이다

문득 창밖을 바라본다.


유난히 청명한 밤하늘에

둥근달과

그 곁에 조그만 별 하나가

우리 집을 은은히 비추고 있다.


그 위로

우리 두 아이의 얼굴이 포개어진다.


"아빠 힘내"

환청 같은 소리가 빛이 되어 마음을 채운다.

그 빛의 온기 때문인지

아이를 안은 내 품이 조금 더 따스해진다.


달과 별이 있어, 아빠의 길이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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